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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즐거운 궁리가 많아서 행복한 삶

나는 사계절 중 특히 6월을 좋아한다.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향기를 뿜어내고, 산 숲에서 뻐꾹새가 노래하는 생명감이 좋아서다. “올해 희수喜壽 아니신지요?” 독자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그 뜻을 찾아보니 77세를 가리키는 거란다. 어느새 나이가 그리 되었을까? 낯설지만 현실로 받아들이며 가만히 웃어본다. 오늘 배달된 장미꽃 바구니를 보면서 생각한다. 77세답게, 50년 이상 수도원에 살아온 수녀답게 곱절로 기쁘게,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행복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고 가까운 데 있다” “행복도 불러야만 오는 선물이다” “누가 내게 해주길 바라는 것을 먼저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그 안에 행복이 숨어 있지 않을까?” 등등 인터뷰나 수업 시간에 나는 행복에 대해 가르치고 답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싶어 열심히 행복해지려고 노력했다. 

 

요즘 내게 언제 특별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매 순간 설렌다고 답할 것이다. ‘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설렘의 기쁨’이 나를 가슴 뛰게 만드니 삶이 지루할 틈 없다고!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해야 할 일을 새롭게 디자인하느라고 즐거운 궁리가 많아 행복한 인생 학교의 실습생이라고!  

 

담임교사가 소개한 <우리 동네>라는 내 수필그림책을 보고 편지를 쓴 초등학생들에겐 어떤 식의 답장을 보낼까 궁리해본다. 알을 낳고 싶어 하는 새에게 공간을 내주었더니 알 여섯 개를 낳았다며 사진 찍어 보낸 맘씨 고운 지인에겐 어떤 식으로 기쁨을 공유할까. 내 책의 특정한 구절을 필사하면서 용기를 얻었다는 독자에겐 어떤 모양의 감사 카드를 전할까. 엄마를 여의고 슬픔에 빠진 젊은 수녀에겐  어떤 표현으로 위로를 전할까. 자신이 돌보는 중증 장애인들을 보배라고 부르는 대단한 자매에겐 어떤 선물을 보내면 힘이 될까. 엊그제 누가 택배로 보낸 음료수는 달동네 공부방으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네. 

 

삶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상실해서 괴롭다는 후배에겐 헬렌 켈러의 <내가 사흘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을 정독하고 필사해 보라고 권유하는 게 좋겠지? 내가 입원했을 때 병실 청소를 열심히 해주던 자매에게도 연락을 해봐야겠네 등등 기도 시간은 이런저런 즐거운 궁리로 가득하다. 그래, 그래. 행복은 이렇게 누구를 기쁘게 해줄 궁리를 하는 데서 빚어지는 열매인 거야. 

 

더 많이 궁리해보자. 더 많이 감사하고 기뻐하자.  나는 네 살 때인가 동네에서 놀다가 사람들이 예쁘다는 말을 하면 쏜살같이 집으로 뛰어와 그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 재밌는 아이였다고 한다. 남학생들에게 러브레터를 많이 받던 10대 소녀 시절엔 한 사람의 애인 아닌 모든 이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말을 겁도 없이 하더니 어느새 77세 할머니가 되었구나. 결혼을 안 했기에 밥 잘 해주는 예쁜 엄마나 할머니는 되지 못했지만 시로 밥을 짓고 나누어 독자들과 폭넓게 친교를 나누며 살게 되었으니 나의 또 다른 이름은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 집’이 아닐 수 없다. 그래 그래 오늘도 더 행복하자!

 


“‘수도 생활을 50년 한 심정이 어떠냐’ 물으면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낀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물빛 평화, 이해인 수녀가 행복이라 말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50년 동안 ‘읽는 이를 일으켜 세우는 시인’으로 살아온 그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입니다. 시집으로 <민들레의 영토> <내 혼에 불을 놓아> <작은 위로>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사랑할 땐 별이 되고>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기다리는 행복> 등이 있습니다. 그밖에 수필그림책 <수녀새> <우리 동네>, 기도시 그림책 <어린이와 함께 드리는 마음의 기도> 등을 펴냈습니다.  

 

글 이해인(수녀, 시인)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