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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봄이 작은 걸음으로 다가온다. 마당에 오는 봄을 지켜보면 한 해도 같은 모습이 없다. 2월 중순이면 약속을 지키는 복수초가 첫째로 노란 꽃을 피운다. 옮겨 심은 적도 없건만 저절로 퍼져서 여러 그루가 되었고, 키가 부쩍 자라면서 이파리가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 해가 나면 피고 해가 지면 지고를 반복하다가 방울 같은 씨방이 달리는데, 그것도 예쁘다. 그 과정이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믿을까? 참으로 기특한 꽃이다. 매화는 또 어떤가? 작은 꽃 속에 꽃술이 그렇게 많이 들어 있는지 몰랐다. 하나하나의 꽃 속에 서른 개가 넘는 꽃술이 있다면 믿을까? 매일 가깝게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비밀 같은 향기가 숨어 있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엄마의 무릎 앞에서 울면서 호소했다. 무슨 큰일이 난 게 아니라,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러움이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충신동에서 보문동으로 이사하고 나서도 이전 학교에 그냥 다녔다. 엄마는 내가 약지 못해 전학을 가면 적응을 잘 못할 것 같다며 먼 길을 다니게 했다. 공부를 뚜렷이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점점 기가 죽었다. 엄마는 징징거리는 나에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아야 군자란다”라는 말을 들려주셨다. 공자님 말씀이란다. 열 살도 안 된 나에게 공자님 말씀이나 군자라는 말이 통할 리 없는데, 그다음 이어지는 말은 내 눈물을 그치게 하고 나의 찌질함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했다. 

 

“공자님이 왜 그런 말씀을 했겠니? 공자님도 너처럼 남이 알아주길 바랐기 때문이란다.” 그때 그 말을 이해한 것 같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말씀은 평생 내 귀에 맴돌았다. 공자님과 나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다니? 어머니가 남긴 글 중에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는 글이 있다. 거의 마지막으로 쓰신 글이고 나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 자주 꺼내서 읽게 된다. “인간관계 속에서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해 버릇하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쩌면 나를 행복하게 한 것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책 속에서 아름다운 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배우며 따르고 싶어 하던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남이 나를 알아주길 기다리는 것보다 나 스스로 먼저 알아주고 발견해갈 때 저절로 행복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 손녀가 가지고 놀다가 해지고 찢어진 인형이 아프다며 고쳐달라고 나에게 갖다 준다. 아가의 친구인 강아지 인형을 정성껏 꿰매주면서 알지 못할 기쁨이 차오른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행복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훈기 깃든 글을 한참 되새기며 읽었습니다.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비법이 이 짧은 글 속에 다 들어 있더군요. 수필가 호원숙 님은 박완서 선생의 맏딸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뿌리 깊은 나무> 편집기자로 일했습니다. 산문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운 곳이 생겼다>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과 동화 <나는 튤립이에요> 등을 펴냈습니다. 1992년 박완서 선생의 일대기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을 썼고, 2011년 어머니가 작고한 후 아치울에 머물며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등의 출간에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박완서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의 말>을 엮었습니다.

 


글 호원숙(수필가)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