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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나의 안전기지는 어디일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제가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정도 직장도 있는데 모든 게 짐처럼 버거워요.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주세요.” 나는 그에게 이유를 찾아주려고 생각에 잠긴다.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는데 행복하지 않나요?” 그가 답한다. “집에서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아내나 아이들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함께 있어도 고독하고 허전한 느낌은 그대로입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허탈한 표정에서 가족이 주는 안락함과 행복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생계를 꾸리느라 바빴고, 어린 아들에게는 힘들고 피곤한 모습으로만 기억되었다. 학교에서 그는 어두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공부에 매달렸고, 원하는 대학과 직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왜 고생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였다. 정신의학자 존 볼비의 애착이론에 따르면 부모는 힘들고 불안할 때 찾아와 안전을 느끼는 안전기지(secure base) 역할을 하며, 그런 기지가 잘 만들어질 때 앞으로 일생에 걸쳐 좋은 대인 관계를 형성할 능력이 생긴다고 했다. <하버드대학교인간성장보고서>에서 정신과 교수 조지 베일런트는 1938년에 시작해 8백14명의 서로 다른 집단을 평생에 걸쳐 추적 관찰했다. 하버드 법대 졸업생 집단, 지능이 뛰어난 여성 집단, 대도시 출신 고등학교 중퇴자가 그들이었다. 베일런트는 이들에게서 스트레스 정도는 행복한 삶에서 중요 변수가 아니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긍정적 태도로 넘기는 사람이 더 행복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나는 그가 평생 노력했지만 공부나 직장을 통해서는 자신만의 안전기지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2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날의 분노감은 대인 관계에서 예민한 태도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는 아내를 통해 결국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함께하는 안전기지임을 느끼면서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때의 상처를 긍정적 태도로 바꿀 수 있었다.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로 인해 우리는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마치 치아를 뽑기 전 마취한 상태처럼 얼얼한 느낌으로 평생을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는 것은 잊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새로운 안전기지를 형성하는 데서 찾아온다. 안전기지는 배우자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 좋은 책, 취미 생활,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어려움을 주고 있지만, 독자 모두 힘을 잃지 않고 자신의 집을 행복이 가득한 안전기지로 만드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신다고요? 몇 달째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저자 전홍진 교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세요. 10여 년간 1만 명 이상의 환자를 상담 치료한 그는 그저 남보다 예민하기에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을 주목하고 위로합니다. “그럴 수 있고 예민함은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듣고, 느끼지 못하는 걸 느끼는 슈퍼맨이다”라고 말이죠. 팬데믹 시대, 고슴도치처럼 변해가는 우리 마음에 필요한 건 그의 말대로 ‘안전기지’일 것입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신과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보건복지부 위탁 중앙심리부검센터 센터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글 전홍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