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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사람을 담은 집

나는 오래된 주택에 산다. 대문은 군데군데 녹이 슬었고 돌계단에는 이끼가 끼었다. 따뜻한 계절에는 담쟁이가 올라오지만, 겨울이면 앙상한 줄기 뒤로 나잇살 가득한 벽돌담이 드러난다. 지붕은 적당히 내려앉고 창문은 뻑뻑하다. 또 마당에는 다듬지 않은 나무와 꽃들이 제멋대로 얽혀 있다. 여기가 바로 20년째 살아가는 우리 집이다.  떠나려던 때가 있었다. 집의 연륜이 고스란히 불편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남편과 나는 아파트라는 신세계에 눈독을 들였다. 실은 아직도 이 계획은 진행 중이다. 매일매일 서른네 계단을 숨을 할딱이며 오르내릴 때마다 내 나이가 야속해졌다. 비가 오면 수챗구멍을 손보고, 단풍이 지면 수없이 빗자루를 들고, 눈이 쌓이면 연신 삽으로 퍼내야 했던 시간들. 아, 예전에는 이런 것을 로망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사’라는 화두가 무르익던 어느 날, 나는 예기치 않은 감정에 빠져들었다. ‘혹시 이 집을 떠난다면…’이라는 가정이 생기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삶의 한 시대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걸레질하며 음악을 들었고, 양지바른 마당 한구석에서 책을 읽었으며, 쪽창 너머 들리는 참새의 지저귐에 잠을 깨던 곳. 피곤에 지쳐 퇴근한 나를 반겨준 것도 이 집이었고, 떠나버린 세 마리 개의 체취를 간직한 것도 이 집이었다. 때로는 아픔을 지켜보고 때로는 즐거움과 동참했다. 함께 나이를 먹었고 함께 삶의 모퉁이를 돌아갔다. 

 

그것은 소중한 이야깃거리였다. 나의 기록이자 기억이었다.  현대건축의 선구자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는 말년에 직접 만든 통나무집에서 살았다. 세계 곳곳에 자신의 아성을 쌓고, 파리에서는 드넓은 펜트하우스를 소유했지만, 집에 대한 마지막 행복은 남프랑스 해안가에 지은 네 평짜리(가로세로 366×366cm) 공간에서 이뤄졌다. 가장 작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여생을 누렸다. 좁지만 우아했고, 단출하지만 안락했다. 그리고 당당히 이렇게 말했다. 나의 궁전이라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행복이 가득한 집>은 두런두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꼭 쥐고 사는 ‘무언가’에 귀를 기울인다. 갓 차린 밥 한 끼의 온기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재잘거림을, 거실 귀퉁이에 자리한 고무나무의 싱그러움을, 벽면에 걸린 가족사진을, 특별한 날을 밝히는 식탁 위 향초를, 침대 머리맡에 놓인 책 한 권을, 서로의 하루를 다독이는 부부의 대화를, 그리고 홀로 사는 이의 어느 겨울 저녁을. 어쩌면 우리는 이 소소한 일상을 ‘행복’이라 부르기도 한다.  <행복이 가득한 집>은 이 위에 조용히 스타일을 입힌다. 예술을 담고 디자인을 제안한다. 번드레한 포장 기술이나 지루한 모델하우스가 아닌, 획일적 가구와 세간이 아닌,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집’을 보여준다. 사는 이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을 말이다. 400호를 펴낸 <행복이 가득한 집>이 가슴 벅차도록 근사한 이유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장을 지낸 김영주 님에게 ‘행복’에 대해 물었습니다. 체취, 모퉁이, 이야깃거리, 단출하지만 안락함, 온기…. 그의 생각이 담긴 언어들입니다. 이는 400호 동안 <행복이 가득한 집>이 전해온 것이기도 하지요. 절대치는 없지만 평균치는 존재하는 것이 행복이어서일까요? 김영주 님은 잡지 에디터로, 패션쇼 기획자로, <행복이 가득한 집> <이매진> <마리 끌레르> <마담 휘가로> 등의 편집장으로, 웅진닷컴 생활잡지사업본부의 장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멈췄고 떠났습니다. 그 길에서 깨달은 건 ‘느리게 머무는 삶의 행복’이었고요. 그 느림, 열정, 행복의 기록을 <캘리포니아> <토스카나> <프로방스>  <태양, 바람 그리고 사막> <인상파 로드> 등에 담았습니다.   


글 김영주(여행 작가)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