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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서울대학교 35동에서 보낸 편지

2000년도 봄, 가뭄이 극심할 때 나는 수처리 전문가로서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물을 찾고 있었다. 가뭄 끝에 내린 빗물을 모두 다 버리는 것을 보고, 빗물도 처리만 잘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빗물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반인이 산성비나 물관리 등에 대한 오해가 깊은 것을 알았다. 과감하게 전공인 수처리를 버리고 ‘빗물 박사’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전문 지식을 전달하려 애썼다. 물 부족을 겪는 우리 국민이 오히려 물을 낭비하는 것을 보고,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화장실과 똥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가 전 세계 많은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섰고, ‘똥과 오줌은 자원이다’라는 생각을 전파하고자 노력했다. <똥이랑 물이랑>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똥 박사’란 이름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재미있고 득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확신시켜야 한다. 나는 서울대학교 35동 옥상에 ‘모두가 행복한’ 물관리의 예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35동 옥상 빗물 텃밭’. 35동 옥상에서는 말 그대로 모두가 행복하다. 비가 오면 오수관으로 버려지던 빗물을 저류 시설을 통해 모아 꽃밭에서 꽃을 가꾸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운다. 빗물 연못에는 금붕어가 새끼를 낳고, 새들이 물을 마시러 온다. 벌통을 두어 꿀도 생산한다. 지난 8년간 이 빗물 텃밭에서 지역 주민과 함께 감자를 캐고, 무·배추를 키우고 김장 나눔도 했다.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체험 행사도 벌였다. 35동 텃밭은 국제적 환경상인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 국가상(National Energy Globe Award)’도 받았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아이들은 추억을 만들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어르신들은 소일거리를 찾기 어려워한다. 자신이 기후 위기를 초래한 것도 아니라면서 억울해하는 이도 있고, 탄소 감축에 협조하려 해도 할 수 있는 일을 몰라서 미안해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를 살아가는 <행복> 독자에게 나는 35동 옥상 텃밭의 경험을 통해 행복을 찾아낸 세 가지 방법을 전하고 싶다. 첫째는 빗물을 모으는 것이다. 빗물을 흘려보내지 말고 모으는 것만으로도 홍수를 방지하고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더울 때는 모은 빗물을 마당이나 도로에 뿌리면 폭염과 열섬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그 빗물로 건물 옥상이나 도시의 빈터에 텃밭과 꽃밭을 가꾸는 것이다. 식물은 광합성 작용으로 공기 중 탄소를 식물의 잎과 줄기로 만드는 훌륭한 탄소 포집 장치이다. 세 번째 방법은 텃밭을 일구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빗물 텃밭에서 교육과 정서 교류, 나눔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식물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며 생명의 경외를 느끼고, 그 기쁨을 나 아닌 누군가와 공유하게 된다. 어르신들도 텃밭을 가꾸며 몸을 움직이는 덕에 심신이 건강해지고, 그 텃밭의 생산물을 타인과 나누게 된다.  빗물과 똥에 관한 고정된 생각과 제도를 바꾸고자 노력해온 지난 20년간의 여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여섯 살짜리 손녀딸이 제 할아버지를 ‘빗물 박사’라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하는 일이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하는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 물었더니 ‘35동 옥상 텃밭’의 기적을 들려주더군요. 한무영 교수는 수십 년 동안 ‘빗물 박사’로 살다, 몇 년 전부터 ‘똥 박사’라는 타이틀을 더했습니다. 시작은 빗물과 똥이 ‘오물이 아니라 자원’이라는 씨앗 같은 생각이랍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했고,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에서 환경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이자 빗물연구센터 소장이며, 세계물학회 빗물관리 전문분과 위원장으로 맹활약 중입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모모모 물관리> <지구를 살리는 하늘물> 등을 썼습니다.  


글 한무영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