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2020년 8월 내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젠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야 할 시간이 더 짧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내게 주어진 한순간 한순간이 보석처럼 소중하다.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살까?” 새삼스레 다시 던지는 질문이지만 사실 오래된, 내 삶에서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다. 답을 찾으려고 수많은 책을 읽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났으며, 살아낸 하루를 반추하며 열심히 일기를 썼다. 질문에 너무 몰입한 것일까? 급기야 나에 대해, 인간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의미를 묻고 답을 찾고, 책 읽고 글 쓰는 인문학자가 되었다. 특히 내 취향에 맞는 것은 그리스 로마 고전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서양고전학자로 산다.  

 

그래서 답을 찾았나? 나중에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답은 있다. 내게 붙은 이름에 충실하자는 것. 예컨대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라는 이름에 맞게 인간과 사회, 세계와 역사에 관해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교수’로 불리니 맡은 강좌를 잘 준비하고, 학생들에게 맞는 좋은 강의를 내놓아야 한다. 그뿐인가. 집에선 ‘여보’ ‘아빠’로, 친지 모임에선 ‘아들’ ‘형’ ‘오빠’ ‘김 서방’ ‘형부’로 불리니 그 이름에 충실한 언행을 해야 한다. ‘친구’ ‘이웃’ ‘시민’ ‘고객님’ 등등 상황마다 주어지는 이름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성공할 때마다 나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흡족해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나는 남 좋은 일만 하는 것인가? 내 기쁨이란 단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다는 이타적 만족에서만 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좋은 교수이며 학자이려고 노력할 때 학생들은 내게 좋은 학생이려 노력했고, 내가 좋은 부모이려고 할 때 아이들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했다. 좋은 이웃이려고 하면 좋은 이웃이, 좋은 친구이려고 하면 좋은 친구가 생겼다. 그 때문에 내가 기뻤다. 물론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약한 사람도 있고, 내가 고약할 때도 있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나의 노력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며, 뜻하지 않게 어긋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내 원칙은 여전히 믿을 만하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이런 삶의 원칙은 공동체 전체에도 적용된다. 

 

 내가 교수 역할에 충실하듯, 내가 아플 때 찾아가는 의사도 내게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내가 타는 버스의 운전사도, 내가 먹는 음식을 만드는 식품 회사 직원도 모두 자기 이름에 충실하다면 그들의 노력에서 나는 큰 만족을 얻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사회 전체가 서로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조화롭게 꾸려나가는 공동체는 진정 정의롭지 않겠는가? 플라톤은 이런 나라를 ‘칼리폴리스kallipolis’, 즉 아름다운 나라라고 불렀다. 그런 나라에 살고 싶고,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런 나라에서 내게 남은 시간을 ‘나로 인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으로 인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으로 마음껏 살고 싶다.   

 

“질문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서울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강의할 때 김헌 교수가 꼭 던지는 질문입니다. 베 스트셀러인 그의 책 <천년의 수업>도 “나는 누구인가”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도대 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가” 등 아홉 가지 질문을 인문학과 연결시킵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이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칼리폴리스’라는 거시적이고도 미시적인 답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서양고대철학과 서양고전학으로 석사 학위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서양고전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소속이며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비극, 역사,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글 김헌(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