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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기생충의 행복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에 살면서 남의 와이파이나 훔쳐 쓰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을 ‘기생충’이라 표현했다. 사기를 쳐서라도 잘살아보고자 한 기택 가족의 욕망은 끝내 좌절되고, 그들은 앞으로도 쭉 그 반지하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귀가한 것도 이 때문인데,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런 환경에서는 절대 행복을 찾을 수 없으리라고. 이런 질문을 해보자. 기생충들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을까? 

 

작은 것에 만족하는 예외적인 이들이 있긴 하지만, 사람의 욕망은 대동소이하다.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등등인데, 모두가 이걸 가질 수 없기에 불행한 사람이 생긴다. 하지만 기생충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을 재워줄 조그마한 공간과 허기를 채워줄 한 톨의 밥풀만 있으면 된다. 행복이 ‘원하는 것 중 자신이 소유한 것의 비율’이라면, 분모가 터무니없이 작다 보니 기생충은 어지간해선 불행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기생충이 원하는 게 전혀 없지는 않다. 그들의 목표는 세상의 모든 동물에게 자신의 자손을 넣어주는 것,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짝짓기와 알 낳기를 하려고 한다.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기생충이 곳곳에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짝짓기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숙소와 식량도 무상으로 받는데, 짝짓기마저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고 할 수 있다면 삶이 너무 무료할 것 같다. 빼어난 외모로 사랑받는 판다를 보라. 정성 어린 관리에도 불구하고 판다가 늘 멸종 위기종인 이유는 삶의 목표가 없어서 생기는 무료함이 판다로 하여금 번식에 무관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기생충의 짝짓기는 쉽지 않다. 각 기생충은 특정 환경에서만 짝짓기가 가능한데, 곤충의 몸속에 사는 연가시는 그 특정 환경이 바로 물이다. 하지만 곤충은 절대 자발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니, 연가시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자손을 낳지 못해 멸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연가시는 곤충을 목마르게 만들어서 물에 뛰어들게 하는 기적을 연출한다. 물속에서 기다리던 다른 연가시와 짝짓기를 하면서 얼마나 기뻐할지 상상을 해보라. 

 

여기서 행복의 또 다른 조건을 알 수 있다. 자기만의 목표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  요즘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이 참 많다. 그들의 불행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당장 이루고픈 목표를 갖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 같다. 꼭 이루고픈 목표가 생긴다면 삶이 지루할 틈이 없을 테니 말이다. 끝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기택네 가족들이 박 사장 집에 취직하기 위해 사기를 칠 때가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듯,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행복해지니 말이다.  

 

“누가 기생충학을 공부한다면 뜯어말릴 것”이라면서도, “내가 해볼 만한 학문”이었다는 기생충학자 서민. 이 별난 교수님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을 듣고 별난 행복론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기생충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기생충의 세계와 사회현상을 빗대어 글 쓰는 칼럼니스트이며, 기생충을 소재로 한 책 <서민의 기생충 열전>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 <서민독서> <서민적 글쓰기> 등을 썼습니다. 현재 강연과 저술을 통해 의학을 좀 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알려주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글 서민(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