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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나로 산다는 것

솔직한 고백부터 해야겠습니다.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조금 거북합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은 무척 좋아하지만 “이렇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내 말을 따르세요!”라고 목청 높이는 이에게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좇아가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감정은 곤히 잠든 동안 산타클로스가 난롯가에 몰래 놓고 가는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이라, 간절히 원해도 언제나 가질 수는 없습니다.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왔는데 뒤돌아보면 남은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산타 할아버지가 올해는 바쁘셔서 깜빡 잊고 지나치셨나 보다’라고 상상하곤 합니다. 서글퍼도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행복감의 속성인데요.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아요.” 학창 시절부터 줄곧 1등을 하고,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진학해서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진 젊은 여성이 사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다며 내뱉은 말입니다. 그러고는 대뜸 “죽음이 가장 현명한 결론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들 위로 올라가는 건 더 어려울 게 분명한데, 조금만 방심하면 추락하는 건 너무 쉬워요. 시간이 흐르면 늙고 병들어서 초라해질 텐데, 젊고 예쁠 때 죽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요.”  그녀의 나이 때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나, 하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봤습니다. 꾀죄죄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일하며 꾸역꾸역 논문도 쓰던 대학원생 시절이었는데, “너는 머리가 나쁘다. 싹싹하지 못하다”라는 지도교수님의 지적에 ‘난 안 되는 건가?’라며 좌절하던 내 모습과 화려한 스펙에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녀를 나란히 놓고 보니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가르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스쳐가더군요. 꾸준히 들어주고, 고민을 나누고, 곁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기운을 되찾으면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당장은 전할 수 없었지만, 그녀 마음에 공간이 생기면 그때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이런 거야…”라고 차분히 이야기해주려고 합니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눈앞에 보이는 대로 살면 자기의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립니다.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열정은 사라집니다. 열심히 살아도 감동이 없으니 비참함만 남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던져준 단 하나의 숙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누구와도 다른 가치를 지닌 신비롭고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속적 성취나 성공만 좇는다면 이런 소명은 이룰 수 없습니다. 거짓 자아를 진짜라 믿고, 진정한 자기로부터는 소외되고 맙니다. 불행은 이렇게 찾아옵니다.  행복이란 고유한 자기를 완성해가는 여정 자체입니다. 안락한 느낌이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믿음이 바로 행복입니다. 비록 지금 괴롭더라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창밖을 내다보며 곰곰이 짚어볼 마음의 이야기가 또 생겼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고유한 자기’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20년 이상 환자를 상담하고 치료해온 김병수 박사가 깨달은 행복의 열쇠는 ‘나 자신’이라는군요. 그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와 건강증진센터의 스트레스 클리닉에서 일하면서 직장인의 스트레스, 중년 여성의 우울, 마흔의 사춘기 등 한국적 특성에서 비롯한 아픔을 주목해왔습니다. 올가을 베스트셀러가 된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를 펴냈으며 <버텨낼 권리> <사모님의 우울증> 등도 썼습니다. 지금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라는 작은 의원에서 내담자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습니다.   

 

글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