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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그저 묵묵히 하는 인간

소설을 쓰면서 생긴 안 좋은 버릇 중 하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뻔하다고 미리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친구에게서 <던월Dawn Wall>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얘기를 듣고도 그랬다. 암벽 등반가인 토미 콜드웰Tommy Caldwell이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 바위, 엘 캐피탄El Capitan 수직 코스를 등반하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그런 거라면 진부하지 않나? 줄곧 실패하다가 기어이 성공하고 말겠지. 나는 친구가 호들갑스럽다고 여겼다. 한참 시간이 흘러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영화를 검색하다가 별 생각 없이 <던월>을 틀었다. 누워서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일어나 앉아 있었다. 등반가 토미 콜드웰이 엘 캐피탄 코스 중 15번 피치pitch에 해당하는 던월 암벽을 수평으로 가로지를 때였다. 높이 914m의 화강암 절벽인 던월은 이제껏 어떤 등반가도 맨손으로 오르지 못한 길이다. 요세미티에서 가장 먼저 해가 비친다고 해서 ‘여명의 벽’이라 불리는데, 근사한 이름과 달리 야박하게도 좀처럼 손으로 지탱해 잡을 틈이나 발 디딜 편평한 곳을 찾기 힘든 절망적인 곳이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이상, 그러니까 마법을 부리지 않는 이상 사람이 맨손으로 그곳을 건너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도 토미는 그 벽을 맨손으로 오른다. 이 단순한 사실을 적으면서도 나는 의아한 기분을 느낀다. 어쩌자고 그는 밋밋한 벽에 죽어라 매달리고, 힘껏 기어오르고, 끝내 정상에 다다라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도대체, 왜. 그는 왼손 검지 한 마디를 잃었다. 오래전에 집을 고치다가 겪은 사고다. 검지 한 마디가 없으면 악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암벽을 오르기에는 부적절한 신체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토미는 그 벽을 오른다. 부상당한 손가락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흙더미에 다친 손가락을 일부러 마구 비비고, 딱딱한 돌에 쑤셔 넣고, 쌀겨를 힘껏 문질러가면서. 당연히 토미는 던월에서 떨어진다. 그다음엔 조금 더 나아가지만 역시 떨어진다. 며칠 내내 끊임없이 떨어진다.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화강암 벽을 노려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그래도 다시 떨어진다. 그는 미련해 보인다. 벅차거나 감동적이거나 숭고해 보이기는커녕 되지도 않을 일을 반복하니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버티느니 힘을 빼라. 나는 이제껏 이런 신조로 살아왔다. 한계를 넘어선 도전이나, 고통의 극복이라는 말을 쉽게 의심했다. 지조를 잃은 인간, 도전하지 않는 인간, 한계에 닿기도 전에 포기하는 인간이 내가 아는 인간에 가까웠다. 나는 줄곧 그런 인간이었고, 그런 인간에 끌렸다. 토미처럼 버티는 인간을 보면 나는 두려워진다. 수없이 실패한 끝에 뭔가를 끝내 이룰 정도로 악착같아서가 아니다. 그가 반복되는 실패에도 의미를 묻지 않고 회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함부로 과장하지 않고 멋대로 꾸며내지 않으며 그저 하고 싶어서 한다고만 말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엘 캐피탄 수직 코스를 기어이 정복하는 토미의 ‘진부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할 수 없다”거나 “하지 못한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능이나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실패를 견딜 끈기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산악 다큐멘터리영화 <던월>을 본 소설가 편혜영은 될성부르지 않은 일을 반복하다 기어이 성공하는 암벽 등반가의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에서 어떤 숭고崇高를 발견합니다. 의미를 묻거나 회의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하는’ 그 뒷모습에서 말이지요.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편혜영 작가는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소년이로>, 장편소설 <서쪽 숲에 갔다> <죽은 자로 하여금> <선의 법칙> <재와 빨강> 등을 펴냈습니다. 2017년 장편소설 <홀>로 한국 작가 최초로 셜리 잭슨상을 받은 그는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합니다.
 

글 편혜영 | 담당 정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