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2019년 2월 자신을 사랑하라!

방탄소년단(이하 ‘BTS’)의 2017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소셜아티스트’ 수상 이후 한바탕 난리가 났을 때 그 무렵 발매된 ‘Mic Drop’이라는 곡을 듣고 무척 놀랐다. ‘Not Today’와 ‘Fire’를 뒤늦게 발견하고 나서는 거의 얼이 빠져버렸다. ‘좋다’는 것은 (다른 것들과)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주류 대중음악 사이의 차이란 대개 납득 가능한 양적 차이에 가깝다. 그런데 위 세 곡을 듣고 보며 나는 ‘납득 불가능한 질적 차이’를 느꼈다. 음악과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 셋 모두가 그런 종류의 차이로 완강히 결합돼 있었다. 이런 삼위일체의 경이는 그야말로 ‘서태지 이후’ 처음이었다. 

 

BTS에 대한 늦깎이 공부를 하면서 그들의 작업이 몇 곡만으로는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하나의 총체(‘BTS Universe’)를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대목에 흥미를 느꼈다. 어떤 팀이 멤버 각자를 캐릭터화해서 지속적으로 집합적 서사를 써나가는 사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팬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무대 위 스타의 삶을 재료로 가공해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서사가 아니라, 동시대 청년들의 보편적 감정이입(empathy)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자신의 처지를 투사(projection)할 수 있는 스크린으로서 서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 서사에서 창작자와 수용자는 한 몸인 것처럼 보인다. 

 

그 서사의 밑바탕에 놓인 주제는 10~20대의 존재론적 취약성(vulnerability)이 아닌가 생각한다. 청(소)년기를 살아가는 존재는 가족과 또래 집단 내에서 유ㆍ무형의 폭력으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세대를 가장 중요한 수용자로 삼고 있는 주류 대중음악은 고리타분한 성 역할을 재생산하는 유혹의 수사(‘My Baby!’)에 오랫동안 점령당해 있었을 뿐, 그들의 상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데뷔 이후 악조건 속에서 상처받으며 성장해나간 BTS가 그들 자신의 성장 서사를 써나갈 때 또래 팬들이 그 노래들에서 발견한 것은 자기 자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BTS와 그의 팬들이 공유하는 청(소)년 세대의 ‘상처’라는 주제가 세계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구체적인 동시대적 맥락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오늘날 우리 삶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개인에게 극한의 경쟁을 강요하고, 그중 절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든다. 이 체제가 간교한 것은 이것이 ‘구조적 불행’이 아니라 ‘개인의 실패’인 것처럼 현혹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불행한 것은 자신을 경영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 가혹하게 착취하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한병철, <피로사회>)이 되어간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가 오늘의 청년 세대다. 그리고 청소년 세대는 바로 위 청년 세대의 삶의 현황을 바라보며 절망을 예습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 속에서 극소수의 (예비) 승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예비) 패자는 자기혐오 상태에 빠질 위험을 안는다. 이것이 초래하는 파국적 결과는 다양하다. 애꿎은 타자를 혐오하는 이들도 있고, 우울증에 빠져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상태가 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성장 자체가 언제나 상처받을 가능성을 내포하는데, 신자유주의가 주입하는 자기혐오 덕분에 자신에게조차 상처를 받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BTS의 최근 메시지가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 )’인 것은 자연스럽다. 힙합이 경쟁에서 승리한 자의 자기도취를 ‘스왜그swag’라는 이름으로 전시한다면, BTS는 당신이 누구든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김보경ㆍ강민호, ‘BTS와 이상’, 제7회 이상학회 공동 발표문). 이를 두고 값싼 ‘셀프 위로’ 유행의 변종일 뿐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BTS의 주문呪文이 동시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겸허히 확인할 일이다. 그 주문이 전 세계의 청(소)년을 자기혐오에서 끌어내 그들의 영혼을 ‘방탄’된 영혼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을 찾은 아티스트, 브랜드 담당자 등과 취재를 마친 후 저녁 일정을 물으면 자녀나 조카를 위해 방탄소년단의 음반과 관련 상품을 사러 간다는 대답을 몇 년 전부터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부터 유럽, 남미까지 국적도 가리지 않더군요. 그야말로 전 세계적 현상!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그들이 만들어나가는 이야기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세대의 상처를 위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핵심은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겠지요. 신형철은 아름다운 문장과 정확한 비평이 함께하는 고유한 스타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서로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느낌의 공동체>,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영화 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을 펴냈고,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비평론을 가르칩니다.


글 신형철 | 담당 정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