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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생각 없이 서 있는 꽃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쉬다’의 명사형은 ‘쉼’ 
‘자다’의 명사형은 ‘잠’, 
이렇게 동사를 정리하면 곧 명사가 됩니다. 
‘놀다’는 ‘놀음’도, ‘노름’도 되는군요. 
‘놀다’를 수동으로 만들어보면 ‘놀리다’가 되니, 
‘논다’라는 단어는 조금만 옆으로 가도 변형이 묘하게 일어나네요. 


‘노름’을 왜 운칠기삼이라고 하는지를 알려준 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름꾼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의지와 관계없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아주 잘 풀리면 노름꾼은 ‘신이 나지요’. 이럴 때는 자기를 잊어버릴 만큼 골몰한 경지가 되는데, 그래서 미쳐야 미치는 것이고, 이때에 신이 나와서 돕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스스로 먼저 열심히 하고 그다음은 하늘에 맡기라고 하는 것과 통합니다.
 
“목련나무는 아주 오래된 꽃식물이란다. 거의 1억 년 전에 나타났는데, 그때는 벌 같은 곤충이 아직 진화하지 않은 때였어. 그때의 꽃들에는 색깔과 향기도 없었지. 그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딱정벌레에게 어쩌다 꽃가루 배달을 맡겼단다. 그런데 벌과 나비와 새가 생기자 그들에게 주려고, 아니 그들을 불러들이려고 꽃들은 드디어 색깔과 향기를 각자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야. 꽃나무를 퍼뜨리려는 열망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조금씩 발전시켰지. 그들은  수백만 년에 걸쳐 조금씩 진화해 마침내 대단한 효율을 지닌 채 서로 아름답게 번성한거야.” 이 동화 같은 진화론은 생각 없이 서 있는 꽃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는 데 경외감을 느끼게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을 영접하거나 조상을 기리는 방법이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은 향을 피우고, 꽃이나 꽃잎으로 치장하고 그리고 꼭 음악이 있더라고요. 냄새, 색깔, 소리… 이것이 곧 우리의 오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새삼스럽습니다. 저는 이런 행위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을 만드는 인간의 지적 허영심을 표현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흘러, ‘지성이면 감천’ 하늘도 감동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준비하는 행위라고 믿게 됩니다. 어떤 바람을 염원하기 위해 오감마저 푹 빠질 정도의 준비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요.  좋은 향과 색깔 고운 꽃들과 아름다운 선율이 어우러지는 공간에 탁 들어섰을 때, 순간 거기 왜 왔는지도 잊을 정도로 녹아든 적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기도 드리듯 공간을 만들던 것이, 이제는 인테리어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깨달음처럼 확 느꼈습니다. 올해 황금돼지해는 그냥 평범하게 보내지 않겠습니다. 특별히 잘 받들어 모시려고요. 성심껏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신: 요즈음은 ‘~것 같아요’라고, 자기 뜻이 아니거나 확실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어미를 말끝마다 붙이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저의 위 문장 끝도 수정되어야 합니다. 


<행복이가득한집> 발행인  이 영 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