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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그들만의 방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되어 독립한 이후 거쳐온 수많은 원룸이 요즘 들어 가끔 떠오른다. 3~4분 정도면 청소가 끝날만큼 자그맣던 방들. 이불을 바꾸거나 책상에 놓을 스탠드의 디자인을 선택하는 게 대단한 이벤트였고, 창밖으로 하늘은커녕 옆 건물의 벽만 보여 숨이 막히기도 했지만, 거기서 보낸 온전히 혼자였던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으로 몸 곳곳에 스며들어 나의 일부가 되었다.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아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고, 맥주병들과 과자 봉지로 바닥을 어질러도, 밤을 새우고 늦은 아침에 침대에 들어가도 괜찮았다. 장난감만 한 욕실이 서글펐고, 그 넓이가 꼭 내 세계의 넓이처럼 느껴져 한숨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런 만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다. 가난했지만 정말이지 모든 것이 좋았다. 어느 날 동네의 혼자 사는 여성만 골라 범죄를 저지르던 성도착자가 욕실 창문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 렀고, 곧바로 달려온 옆집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피해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내가 살던 방을 떠나야 했고, 그 뒤로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여자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참을 가만히 듣다가 “나도 그랬어”라며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돌봐야 할 고양이 두 마리까지 있었던 까닭에 나는 원룸 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는데, 다행히 신혼부부 주택 임대 정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여전히 작은 원룸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은 갖가지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고, 서른다섯이 되어도, 마흔이 넘어도, 프리랜서 작가인 나 혼자만의 힘으로 방이 두 개 이상 되는 집으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은 젊은 여성이 비혼·비출산을 결심하고 삶의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자 기성세대로서 그들 앞에 펼쳐질 혼자만의 삶을 부러워하고, 그 꼿꼿한 의지에 갈채를 보내기는 쉽다. 하지만 그들이 현실적으로 직면한 어려움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몸으로, 마음으로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내 또래 여성들은 별다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버렸다. 혼자만의 삶을 꿈꾸지만 범죄 피해자가 되거나 거리로 내몰릴까 두려워서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갈등하는 젊은 여성들을 볼 때마다 부채감을 느낀다. 비혼 여성의 삶은 안전하지 않다. 성폭력, 데이트 폭력, 이별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고, 빈곤과 편견과 갖가지 혐오 속을 혼자 뚫고 나가야 한다. 무수한 방해물이 그들의 의지를 주저앉히고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택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은 혼자서는 어떤 경제적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이성애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선 때문이다. 

바라건대 그들의 소망대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서도 헛된 희생을 하지 않고, 고독을 괴로움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쌓아갈 수 있는 삶이 수월해지도록, 혼자 사는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는 정책이 강화되고 보완되었으면 한다. 비정규직 여성이 노동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기 바란다. 현재 이성애 결혼을 한 신혼부부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지는 여러 가지 주거 혜택과 금융권 대출 자격이 비혼 여성에게도 동등하게 주어졌으면 한다. 도움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세대보다 분명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그들의 하루하루에 미안한 마음을 얹은 응원을 보내고 싶다. 

남성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소외·배제되어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선 젊은 여성들. 소설가 윤이형은 이들과 선명하게 겹쳐 있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과 그 대책을 이야기하고, 응원합니다. “고독을 괴로움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쌓아갈 수 있는 삶이 수월해지도록” 말이지요. 윤이형 작가는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 ‘검은 불가사리’가 당선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 <러브 레플리카>, 중편소설 <개인적 기억>, 청소년 소설 <졸업> 등이 있으며, 문지문학상과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글 윤이형 | 담당 정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