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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맑다가 흐리고, 바람 불다 그치고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한 것은 지난 1월 29일.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연구년을 받아 1년간 살 예정으로 이곳에 왔다. 극심한 한파로 베란다의 세탁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공동 세탁실을 이용하다 온 탓에 더욱 그랬겠지만, 겨울 같지 않은 이곳 날씨가 참 좋았다. 더구나 눈을 시리게 만드는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자니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송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떠나온 한국 날씨를 검색하며 여전한 한파를 확인하고는 마치 지인들을 두고 혼자 재난을 피해 도망 나온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에서 불어오는 사나운 바람인 미스트랄mistral(북서풍)을 경험했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간판이 날아갔으며, 뿌리째 뽑혀 나뒹구는 아름드리나무들을 공원에서 보았다. 날씨 정보에 표시된 온도계의 숫자는 서울보다 훨씬 높았지만, 몸이 느끼는 추위는 서울의 한파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 날이 사나흘씩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바람이 잦아들고 이내 얄미울 정도로 투명하고 밝은 햇빛이 비추었지만, 그래서 미워할 수 없게 했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강풍이 불곤 했다. 프로방스 사람들의 집 문과 창을 가리는, 볼레volet라고하는 그 유명한 나무 덧문이 필요한 이유를 저절로 깨달았다. 

어쩐 일인지 올해는 4월이 되었는데도 비가 많이 온다. 이곳에 오래 산 사람들 말로는 1년 3백65일 가운데 3백60일이 맑은 날이라 하고, 4월이 되면 혼을 빼놓을 정도로 날씨가 좋아서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제까지 나의 프로방스 생활 70일 가운데 절반은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었다. 물론 혼을 빼놓을 정도로 좋은 날씨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구나 싶은 날이 없지는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날은 카페와 공원 잔디밭에 나와 햇볕을 쬔다. 해수욕장에서나 볼 것 같은 복장을 한 성급한 사람도 드물지 않다. 그렇지만 이제 좋은 날씨만 계속되겠구나 하고 안심하면 어김없이 배신을 당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하여 이런 일이 생긴다. 한국의 날씨가 따뜻해져 봄꽃 소식이 들려온 날, 이곳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내렸다. 한국은 꽃이 다투어 핀다는데 이곳은 이제 플라타너스가 힘들게 잎을 틔우고 있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해가 쨍쨍하다가 금방 흐려지고, 비가 오다가 곧 개고, 해가 나왔다가 숨었다가 한다. 변덕이 심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날씨는 원래 그런 것이다. 따뜻하다가 춥고, 맑다가 흐리고, 잔잔하다가 바람이 부는 게 자연이 우리에게 하는 일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를 말하는 ‘삼한사온’이라는 표현은 그 자연의 변덕스러움에 인간이 규칙을 부여한 것일 뿐이다. 삼한사온은 자연의 규칙이 아니고 자연의 변덕스러움을 이해하는 인간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미스트랄이 하루나 사흘, 닷새 이런 식으로 홀수로 분다는 규칙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우리는 삼한사온의 규칙이 깨졌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을 이해하는 다른 규칙을 발명해낸다면 모를까 자연의 무규칙을 탓할 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내가 요즘 경험하는, 예전 같지 않다고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프로방스 날씨는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에 한국과 한국의 지인들에게 지닌 이상한 죄스러움을 말끔히 지워주었다. 나는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하는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이 사는 모양이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다. 흐리다가 맑고 바람 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잔잔한 날도 있다. 자연이 사람을 둘러싸고 지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음 주부터는 날씨가 좋아진다는 예보가 있으니 혼이 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프로방스를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부담도 사라졌으니, 자연이 주는 특별한 햇빛과 하늘을 만끽할 준비를 마친 셈이다.  



엑상프로방스! 소리 내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지명입니다. 그곳에서 1년을 살게 된 소설가 이승우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자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과연 어디서나 자연은 사람을 둘러싸고 지휘하지요. “혼이 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프로방스”를 만끽한 그가 또 다른 멋진 글로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이승우 작가는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장편소설 <생의 이면> <사랑의 생애> <식물들의 사생활>, 소설집 <일식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 등으로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독일어ㆍ프랑스어ㆍ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젊은 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중견 소설가로 손꼽힙니다.


글 이승우 | 담당 정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