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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밥을 주문하게 해보자!”

우리 식탁에 어느새 빵이 밥보다 더 자주 오르고 있습니다. 빵을 본고장 유럽보다 더 맛있게 만드는 재주 많은 사람도 속속 등장하고, 올리브 오일이 근사한 테이블 세팅과 함께 들기름ㆍ참기름보다 더 자주 소개됩니다. 오래전 애국자를 자처하며 외제라면 애써 피하던 저에게 누군가가 세상을 바꾸려거든 남의 것이라도 성공한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해봐야 우리 것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예컨대 절대적으로 국산차만 타는 것이 애국이라고 믿은 저에게 한 획이 크게 그려지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제대로 경쟁하려면 세계의 것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발전도 필요합니다. 
밥을 몇백 년 먹어온 민족인데, 가정에서는 물론 한식당에서도 쌀에 대한 고민이 드물고, 밥을 짓는 데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식당에 가면 대부분 손님 취향과는 관계없이 주인이 미리 해놓은 밥을 내줍니다. 최근에는 식빵 한 덩이를 사려 해도 머뭇거릴 정도로 종류가 많고, 스테이크를 시킬 때도 미디엄ㆍ웰던으로 주문하지 않나요? 이 부분에 대한 건강한 울분이 우리로 하여금 오랜 시간 회의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밥을 주문하게 해보자’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행복이가득한집>에는 ‘자연이 가득한 집’이 매달 스무 페이지쯤 만들어집니다. 이 때문에 알게 된 남다른 쌀농사를 짓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매달 쌀 종류를 서너 가지씩 바꾸고 도정기를 들여놓아 현미, 백미, 5분도, 7분도로 취향에 맞게 주문하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나라 북쪽부터 제주까지 1천여 가지 벼 품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구하기도 힘든 볍씨로 농사짓는 분들도 최근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소개도 하고 나아가 밥을 맛있게 짓기 위해 쌀 혹은 밥 소믈리에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 취재하며 알게 된 된장ㆍ간장ㆍ소금ㆍ김치 잘 만드는 분들과 함께 ‘반찬’이 모두 제맛을 내도록 해보자 하였습니다. 요리 스튜디오를 빌려 밥짓는 연습을 두어 달 했습니다. 쌀과 밥물의 적정량, 불리는 시간, 건져놓았다가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 등 연구할 것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행복>이 소개한 공예가들의 그릇과 매트를 사용하면 식사에 품격을 얹을 수 있을 터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이런 것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으려면 한곳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인사동 골목 안에 아주 낡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피맛골과 승동교회가 연결되는 뒷골목, 1백 년은 넘어 보이는 오동나무가 죽기 일보 직전인 공간을 찾았습니다. 지붕을 걷어내고, 아니 잘라내고 건물 사이를 작은 쌈지 공원으로 만들고 수액을 주었더니 하나 있던 잎사귀 아래 새잎들이 돋았습니다. 죽어가는 오동나무도 살리는데, 우리의 좋은 생각도 푸르게 펼쳐질 것 같아 이곳에서 우리의 관심과 의지를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인사동은 독자들도 오시기 좋아할 지역이라고 믿었고요. 그렇게 오래 고민하고 실험하며 ‘행복한상’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행복 한 상’도 되고 ‘행복한 상’도 되니까 이름도 좋다고 생각했지요. 
 

이 ‘행복한상’을 이달로 잠시 닫습니다. 
몇 달 운영하다 보니 식재료 구매와 손님 접객, 비용 관리 등 레스토랑 운영이 대단히 복잡했습니다. 어떤 분은 <행복이가득한집>이 밥집도 하냐고 물으셨지만 “글쎄, 그냥 밥집이 아니라니까요! 밥을 주문하게 하자! 이 조그마한 차이가 큰 차이!”라고 외치던 그 마음은 그대로 지니고 언젠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려 합니다. 한 끗이라도 일러드릴 경험은 했으니, 이런 시도를 누군가 다시 하신다면 저희에게 물어주십시오. 기꺼이 같이 고민하고 상의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눈으로 먼저 밥을 보시라, 그리고 밥의 향기를 맡으시라…”라는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이런 곳이 필요했다! 밥맛이 정말 다르다”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밥집’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던 ‘행복한상’의 직원들, <행복이가득한집> 기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밥을 지어 좋은 찬을 곁들여 정갈하게 차려 먹는 경험을 나누는 일은 또 다른 도전으로 계속될 테니, 시간이 좀 걸려도 기다려주십시오! 



추신  우리 회사에서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가 봄맞이입니다. 3월 7일부터 닷새간 코엑스에서 열립니다. 지면에 소개한 인테리어 관련 소품들과 좋은 브랜드들의 제품을 독자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행사가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봄, 그해의 인테리어 경향을 선도하고, 나아가 이 분야의 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전시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우리 독자님들 초청이 가장 우선입니다. 올해는 공간이 더 커졌습니다. 꼭 나들이 나오십시오. 봄 맞이를 하셔야죠.
 

<행복이가득한집> 발행인  이영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