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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마음을 나누는 대화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봐야지.” 연말이 되면 으레 친구들에게서 이런 연락이 오지만, 해가 갈수록 사람이 많은 시끌벅적한 모임이 재미없고 피곤하다. 그러다보니 ‘이날은 안 되고 이날도 안 되네’ 하는 식으로 만남에 수동적 태도가 된다. 지난 연말, 반갑고 유쾌한 모임도 있었지만 빨리 집에 가서 발 닦고 자고 싶어지는 모임도 있었다. 그중 한 친구를 만난 일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
 

“왜 그렇게 소식이 없었냐”며 한번 보자는 연락이 왔다. 졸업 후 모임에서 1년에 한두 번 만나다가 그런 모임마저 없어져 꽤 오랫동안 잊고 지낸 친구였다. 식사를 하고 맥주를 한잔하며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주거 공동체 이야기를 했고, 친구는 회사와 육아 이야기를 들려줬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없는 직장 생활, 퇴근 후 계속되는 육아의 피로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별로 없는데서 오는 심심함. 이야기를 들으니 나 역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졌다. 나는 일상을 함께하며 미래를 그리는 친구들과 살아서 그런지, 그 친구의 삶이 고립되어 보였다. 자신도 남편도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어 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족해 보였다. 반면 나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하지만 친구들의 관계망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15년간 그 친구와 나의 삶이 많이 달라졌구나 실감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헤어지면서 친구는 앞으로 종종 만나서 아이와 함께 놀자고 했다. 내가 사는 주거 공동체 ‘우동사(우리 동네 사람들)’에도 와보고 싶다고 했다. 말로는 “그러자” 했지만, 이상하게도 반가움보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그런 나 자신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밀어내고 마음을 닫으려 하는 내가 탐탁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찜찜함이 가시지 않아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인상깊던 대화가 떠올랐다.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자리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선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모임 초반, 근황을 공유하는 시간에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며 “요즘 사는 게 어때요?” 하고 물었다. “또래 친구들이랑 주거 공동체를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즐겁고 안심되고 재미있어요”라고 대답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떤 연유로 눈물이 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 정말 궁금해서 묻는 그녀의 눈빛과 말투가 아직도 기억에 선연하다. 질문을 듣는 순간 빗장이 걸려 있던 마음이 스르르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 인상이 하도 강렬해, 나도 사람들과 그렇게 대화를 해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나와 지향하는 삶이 다르니 뭔가를 같이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은 것 같다. 친구 이야기가 잘 들릴 리 없었고 마음이 보일 리 만무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와 어떻게 살든, 사람들이 바라는 삶은 다 같지 않을까. 경제적 불안 없이 사람들과 따뜻함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 친구의 푸념 속에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는 듣지 않으려 한 것 같다.  “연말이니 한번 보자.” “밥 한번 먹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말일 것이다. 서로의 고민과 바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래서 더욱 마음이 열리는 대화에서 오는 기쁨과 감동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말보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 다시 돌아올 연말에는 이 친구와 그런 만남을 하고 싶다.  

지난 연말 어떻게 보내셨나요? 반가운 얼굴로 가득한 왁자지껄한 모임이 이어지지만,  다녀와선 왠지 더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활동가이자 작가인 김진선 씨는 지난 연말 한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말보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눈을 맞추고, 빗장이 걸린 마음이 스르르 열리는 그런 대화 말이지요.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김진선 씨는 비영리단체 ‘아름다운가게’ 활동가를 거쳐 네이버에서 해피빈 서비스를 기획 운영하며 공익 콘텐츠를 발굴했습니다.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2년 동안 공부와 휴식, 일의 균형을 맞추는 실험과 새로운 일하기 모델을 탐색한 후 그 결과를 <적당히 벌고 잘 살기>라는 책으로 엮었습니다. 지금은 청년 주거 실험 공동체 ‘우동사’에서 공동 주거를 하며 ‘적당히 벌고 잘 살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글 김진선 | 담당 정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