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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짐이 될래? 힘이 될래?

이 질문 좋죠? 남에게 장난삼아 물어도 좋고, 스스로에게 물어도 좋지 않나요? 그리고 ‘지금 나는 남에게 어떤 존재일까?’ ‘더 나이 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를 생각해보기에도 적절한 질문 같습니다. 글자도 참 비슷하게 생겼네요. 둘 다 네모난 큰 가방을 들고 있어요. 그 가방 속에 쓸데없는 것이 가득하면 짐이고, 남에게 꺼내어줄 게 있으면 힘이 아닐까요?

재료들이 쌓여 있는 마루방, 겨울 햇살을 맞아들이는 창문 아래 나이 든 분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나무를 자르고 가늘게 찢어내고 보푸라기를 벼르는 솜씨가 오랜 세월 그 일을 해왔음을 알게 해줍니다. 카메라 앵글이 가끔 창밖을 스케치합니다. 거긴 온통 하얀 눈입니다. 지붕에도 나무에도…. 그 광경을 밖에 두고 깊은 겨울 집 안에서는 그분이 대나무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중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무늬까지 아름답게 만들어 넣은 대나무 접시를 그 투박한 손으로 카메라 앞에 들어 보입니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그 납작한 대나무 그릇에 메밀국수를 돌돌 말아 나무 잎사귀 곁들여 예쁘게 담아놓은 마지막 장면. 이것은 죽공예 장인을 촬영한 영상입니다. (정말이지, 플라스틱 그릇보다는 저렇게 공이 들어간 대나무 접시에 잘 삶은 국수를 담아서 차분하게 식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용한 럭셔리! ) 그분이 만드는 대나무 공예품들은 수월찮은 가격에 팔기도 하니 자식들에게 얹혀살지 않아도 되는 생산적인 노년입니다. 남에게 짐이 안 되는 삶이란 진정 자기 것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깨달음이 오는 영상입니다.

맹도견과 함께 생활하는 시각장애인 부부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우, 그 커다란 몸집에 그렇게나 착한 눈을 지닌 동물이라니…) 이분들은 자신들이 겪는 편견과 어려움은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같이 생활하는 맹도견을 선입견으로 잘못 대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참지 않고 항변한다고 합니다. 개에게 보호도 받지만, 오히려 개를 보호하려는 책임감으로 더욱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대상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때까지 힘을 잃지 않는 것이지요. 이걸 친구한테 설명했더니, “말이라고 해? 그러니까 이 땅의 엄마들이 그렇게 극성인 거잖아.” 아, 아이들이 엄마들의 힘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힘이 되는 삶이란 확실하게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개, 가족…. 훌륭한 사람은 책임감을 느끼는 대상을 스스로 많이 만들어두고 있는 것이겠지요. 선생은 학생에게, 시장은 시민에게, 대통령은 국민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니까요.

나이 들어서도 무엇인가를 생산하거나 남을 보호해줄 능력을 지니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났더니 제 속에서 제게 말을 합니다. 우선 짐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요. 그러려니 오랫동안 건강할 수 있도록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작은 소망이 새해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힘이 있어야 선뜻 남의 짐도 들어줄 수 있으니까요. 꾸준히 운동한다는 것은 몸과 정신을 아우르는 일이어서 이 관계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결심이 쉽게 무너지곤 합니다. 정신이 몸에게 잘 타이르고, 몸은 정신을 만들어가는 이 메커니즘은 제조 과정에 놓여 있는 미완성품 같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동사의 삶을 살자! 힘이 될래? 짐이 될래?” 저에게 물으며 운동하려고요. 

추신  제가 자주 이렇습니다. 남들은 다 하고 있는 일을 결심이랍시며 침소봉대한답니다.

<행복이가득한집> 발행인 이영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