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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집이 책이다

내가 사는 마을은 산골이다. 앞산과 뒷산 거리가 100m가 될까 말까, 그 정도다. 그 사이에 50m 정도의 폭으로 강물이 흐르고 있다. 해가 짧은 겨울이면 앞산에서 해가 떴다 싶은데 금세 진다. 오죽 해가 짧으면 노루 꼬리만 하다고 했을까. 오후 4시 반 정도면 뒷산 자락에 붙어 있는 마을에 산그늘이 내려앉는다. 계곡이나 마찬가지여서 마을의 공간이 좁다. 집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집을 짓기 쉬운 자재와 관리 능력에 따라 집의 크기와 구조가 정해진다. 옛집들은 풀과 나무와 흙으로 지었다. 다른 건축자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료가 나무여서 방의 크기가 작고 집의 크기도 작았다. 우리 마을의 집은 네 칸 홑집이 제일 컸다. 작은방은 일곱 자 방, 광 방은 여덟 자 방, 큰방은 아홉 자 방이 많았다. 한 자가 30cm쯤이니 큰방의 가로세로 길이가 270cm 정도였다. 그리고 부엌, 이렇게 방이 일자로 나란했다. 어느 해 건축 대장을 만들려고 처음으로 집을 측량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집은 건평이 열두 평 반이었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큰 편인 반듯한 집인데도 겨우 그 정도였다. 

처음 집을 지을 땐 초가집이었다. 아버지는 달빛 아래 이엉을 엮어 지붕을 이고 처마를 가지런하게 다듬었다. 그 처마 속에 참새들이 집을 지었다.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기와로 개조했다. 그 기와집 뒤에 작년에 집 두 채를 새로 지었다. 알다시피 지금은 집이 크다. 생활양식이 다르고, 방 안에 들여놓을 것이 많아서 집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와집 바로 뒤에 29평 집을 짓고, 그 옆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45평 정도의 집을 지었다. 집 모양은 땅이 생긴 대로 설계했다. 될 수 있으면 옛 돌담들은 허물지 않았고 샘과 샘가에 있는 큰 바위도 지켜냈다. 땅을 측량해보니 이웃집과 우리 집의 경계가 들쑥날쑥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집을 지어놓고 보니, 그 때문에 오히려 집을 입체적으로 짓게 되어 장점이 되었지만 말이다. 자재는 파벽돌로 했다. 

황토색이어서 산천과 잘 조화를 이루고 도드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지어놓고 보니, 오래된 집 같고, 지나가다 보면 집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지붕은 슬래브로 했다. 서재로 쓰고 있는 한옥 바로 뒷집은 한옥이 집을 가려 정면이 작아 보인다. 생활을 하는 큰 집도 단층 슬래브다. 집의 정면이 마을 앞쪽으로 향하지 않고 마을에서는 집의 옆면이 보여 작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열두 평 반의 한옥이 가장 커 보인다. 한옥이 두 집을 가리고 있고, 한옥의 지붕이 집 두 채의 지붕처럼 보인다. 집터를 다듬을 때 나온 돌로 돌담을 쌓았고, 계단 돌들도 집터를 다듬을 때 나온 가장 못난 돌들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지었다. 아무리 잘 짓는다고 해도 지어놓고 보면 허점투성이고 아쉬움과 후회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 괴로웠다. 집은 책이다. 집은 시각적이어서 즉각적으로 사람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주고 사람들을 교육한다. 집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살고 있는 삶과 살아갈 삶이 담긴다. 집은 글과 같아서 그 사람의 전부다.

아파트 거실에 들어서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어디까지인지 금방 짐작이 간다.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를 그가 사는 집을 보면 안다. 집은 그 사람이며, 도시는 그 나라 국민의 얼굴이다. 집은 공학이며 인문이다. 시이며 철학이고, 그림이며 사진이다. 한 채의 집을 지을 때 도시 전체의 모양과 집의 크기와 색채를 고려해야 한다. 조화를 생각하지 않은 집은 죽은 집이다. 조화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과 공생의 철학이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은 그 집을 닮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은 그 도시를 닮는다. 한 채의 집은 몇백 권의 책이 된다. 집은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사회적 윤리 척도이다. 이 땅에 새로 생기는 많은 신도시의 ‘나만 잘난’ 안하무인의 건축물들은 오만과 독선, 탐욕과 욕망, 내일을 포기한 자본의 추악한 찰나주의와 쾌락주의의 덩어리들이다. 

김용택 시인이 새로 집을 지었답니다. 집에는 살아온 삶과 살고 있는 삶과 살아갈 삶이 담기지요. 그래서 시인에게 집은 책이고 사람이고 시이며 철학입니다.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순창농림고등학교를 나와 스물한 살에 모교인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외 여덟 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을 일생의 가장 아름다운 일로 여겨온 그는 38년을 몸담은 교단에서 내려온 뒤 글쓰기와 강연을 하며 지냅니다. 얼마 전 서른 살이 된 아들에게 보낸 따뜻한 격려의 글을 묶어낸 <마음을 따르면 된다>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