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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낙타 아홉 마리

옛날 옛적 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신붓감을 데려올 때는 신랑 쪽에서 신부 집에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답니다. 신부 집안의 내력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신부의 아리따움이나 건강함 등이 대가를 얼마나 지불하느냐의 잣대였다지요. 그 지역의 돈도 많고 지체도 높은 한 집안의 젊은이가 이웃 마을의 처녀를 신부로 맞으러 낙타를 아홉 마리나 끌고 왔답니다. 신부 집은 부자이기는커녕 가난했고 신부 역시 그리 예쁘지 않았으며, 당시 기준으로는 너무나 말라서 누가 봐도 낙타 두 마리면 충분했기에 온 동네 사람들은 신랑 될 사람이 바보라고 쑥덕였답니다. 훗날 그 신부는 아내 역할을 너무나 잘하고, 신랑 집안에 어울리는 행동거지에 심지어 살도 알맞게 쪄서 보기 좋은 모습으로 변했다는 소문이 신부 마을까지 들렸답니다. 그 마을의 한 어른이 어느 날 이 신부를 데려간 신랑에게, 예전에 어째서 그리 과한 낙타를 선물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기 아내 될 사람이 자신의 가치가 그렇게 높다는 것을 잊지 않고 그 자부심에 어울리게 처신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미래에 대한 지불이었다고 대답했답니다.

새해 들어 한 달 새에 병원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가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 증상에 다른 병이 겹친 게 아닌가 싶어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려 하자 의사가 말을 자릅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말하다가 말이 잘린 저는 얼이 빠진 채로 “여기가 경찰서예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아 예, 그럼 말하세요.” 의사 가 마지 못해 허락했지만 그다음은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싸울 작정도 따질 상황도 아니게 되어버렸으니까요. 며칠 후, 어떤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또 탈이 나서 가고  싶지 않은 그 병원 응급실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마 낮에 회를 먹은 게 잘못되었나 봐요.” “그건 저랑 상관없는 일이고요.” ‘엥, 이건 무슨 말이지?’ 의사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은데 벌써 급한 걸음으로 가버렸습니다. 이 병원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지난번 의사도 그렇고 이들은 다 왜들 이럴까! 게다가 한두 시간 걸쳐서 진행된 검사와 주사에 대해서도 적절한 설명도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바람은 고사하고 환자 대하는 태도가 너무 바람직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응급실에 환자도 거의 없어 나오는 길에 마음먹고 따졌습니다.  “의사 선생님, 환자가 무얼 먹고 배탈이 났는지를 얘기하는데 선생님과 상관없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무얼 먹고 그랬는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게다가 바쁘고···.”  “그렇게 바쁘신데, ‘나랑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아, 그래요?’가 짧고도 좋군요. 환자는 정보를 드리려는데, 아니 그걸 떠나서 잠깐만이라도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안 되나요? 지난번에 옆에 계신 선생님도 그렇고, 환자에게 너무들 배려가 없으신 것 아니에요? 이 병원 이래도 되나요?” “아 뭐, 저는 1년만 여기 있다 갈 거니까요.” 우아, 이런 용렬한 의사 인간! 정말이지 의사가 환자인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작 이런 말이야말로 저랑 상관없는 일로서 그게 환자에게 할 소리냐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치료를 맡긴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 하도 딱하고 어이가 없어서 끝을 흐지부지하고 응급실을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낮다면 바로 업신여김의 갑질이 들어갑니다. ‘업신여김’, 이 말을 여러 번 음미해보았습니다.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본딧말일 것 같습니다. 돈이 없고, 실력이 없고, 건강이 없고···. 상대가 이런 것이 없다고 여겨지면 바로 함부로 대하는 자세. 없는 사람을 더 아프게 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언행들! 정말 우리 그러면 안 되잖아요. 상대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낙타 아홉 마리까지  주는 멋진 투자 바보가 생각납니다. 일상의 작은 만남에서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말과 태도가 오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살 만한 사회가 된다고 믿습니다. <행복이가득한집> 독자분들, 올해는 하도 우울한 일이 많으니 함께 우리 사회 기분 좋게 만드는 캠페인해요. 

추신 한남동에 있는 대학 병원입니다. 이 병원이 혁신하면 좋겠습니다.
또 추신 3월 8일부터 닷새간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합니다. 이거 보셔야 봄맞이하는 기분 나신다고요. 주제가 ‘우리 집에 놀러 와’입니다. 집들이 문화가 사라져가는 만큼 ‘그 집다움’도 없어져간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