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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태극기와 김치통

큰형과 13년 터울이다. 어려서는 무서워 형 앞에서 말도 못 꺼냈다. 오십이 가까워 늦둥이를 보신 늙은 아버지와는 다른, 실감 나는 아버지 느낌이었다. 나이가 드니 형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아 좋다. 오히려 다섯 형제 중 장남과 막내가 가장 잘 통하고 친밀하다. 중간의 형들이 샘을 낼 정도다. 같이 술을 마시면, 둘째 형은 큰형에게 안주 좀 잘 챙겨 드시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나는 젓가락으로 생선을 집어 입에 넣어드린다. 큰형은 취하면 작은형들에게는 어린 시절 많이 때린 일을 이야기하지만 오십이 넘은 나에게는 귀엽다며 뽀뽀를 한다. 새해 첫날, 경기도 전원주택에 사는 큰형 집으로 형제들이 모였다. 고기나 구워 먹자고 내가 제안했다. 몇 달 전부터 큰형은 2층짜리 큰 집에 혼자 살고 있다. 예순여섯 살에도 여전히 자존심은 펄펄하고 성격이 꼬장꼬장해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족들 다 내보내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는 사람이다. 사실은 내보낸 것이 아닐 것이다. 형수도, 조카들도 성격 유별난 노인네가 싫다며 자발적 독립을 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개에게 먹이 주며, 잔소리 듣지 않고 낮술 한잔 하는 생활이 좋다는 그 말이 동생들 걱정 덜어주려는 소리임을 어찌 모르랴.

김장 김치가 맛있다고 하니 큰형은 본인이 직접 담갔다며 막내 것을 한 통 챙겨놨다고 했다. 그것도 한 마리에 1만 5천 원 하는 비싼 갈치를 넣어 만든 것으로 특별히 담아놨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후 슬쩍 큰형에게 말했다. “요즘 주말마다 시청 가지 않아요?” 형은 그렇다고 했다. 태극기 들고 시청 앞에 나가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외친다고 했다. 같은 시각, 막내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서 있는데, 형제는 이렇게 지척에서 다른 주장을 외치고 있다. 오래전부터 큰형과 나는 정치적 입장이 달랐다. 지지하는 정당도 달랐고 응원하는 대통령도 달랐다. 그렇다고 부딪친 적은 없다. 형이나 나나 정치적 신념이 너무 강해 누가 뭐라 해도 절대 변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큰형이 대통령 취임식을 쫓아다니고, 누군가 대통령 욕을 하면 독수리 타법으로 반박의 댓글을 쓰는 그 행동에 묘한 안도감 같은 감정이 어느 시점부터 생겼기 때문이다. 당신이 보이는 이 모든 정치적 열정이 이빨 다 빠진 늙은 맹수의 마지막 소일거리라면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펄펄한 기백으로 살다가 세상의 중심에서 밀리고, 가정 안에서도 괴팍한 가장으로 내몰리는 내 큰형이 그나마 우울증에 빠지지 않은 것은 ‘으르렁’ 까지는 아니더라도 ‘으릉’ 소리 정도는 낼 수 있는 대상과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덕수궁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때때로 너무나 뻔한 상식적 사안에 대해서도 억지 주장을 펼치는 그들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저쪽 광장의 사람들 눈에도 이쪽 광장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사람으로 보일 것이고, 무엇보다 저쪽 광장에 내 형과 누군가의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나와 다르더라도, 그 다름이 각자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큰형에게 전화를 했다. 시청 앞에 가더라도 옷 따뜻하게 입고 가시라, 앞줄에 서지 말고 뒷줄에만 있다 오시라, 공연히 촛불 든 사람 자극해서 험한 꼴 보지 마시라, 형 눈에 방송이 전부 빨갱이로 보이더라도 지역 감정이나 여성 비하 조장하는 철없는 애들 노는 인터넷 사이트는 들어가지 마시라…. 늙어가는 막내는 더 늙어가는 큰형에게 스피커폰에 대고 이렇게 잔소리를 한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뒷자리에 큰형이 챙겨준 김치 통에서 사랑이 담긴 김치 냄새가 폴폴 난다. 내 마음도 묘한 슬픔과 혼란으로 차와 함께 흔들린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합니다. 기질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며, 살아온 시대가 다르니까요. 그렇게 지척에 있는 두 광장에서 누군가는 촛불을 들고, 다른 이는 태극기를 드는 것이겠지요. 윤용인 대표는 그 ‘다름’을 각자 공간에서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믿습니다. 일말의 복잡한 감정은 어쩔 수 없더라도 말이에요. 윤용인 대표는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여행 컴퍼니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그는 남다른 필력으로 중년 남성의 심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탁월한 글쟁이이기도 합니다. 저서로 <행복>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남편의 본심> 외에 <시가 있는 여행>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