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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그 집안의 속사정

내 어린 시절 가장 절실한 소원은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름의 결핍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한번 역사에 이름을 남겨야지” 따위의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이런 말들을 중얼거렸다. ‘훌륭한 사람 말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게 얼마나 큰 야망인데….’ 판사라는 직업에 종사한 후로 그 꿈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것인지 새삼 깨닫곤 한다.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아 보이는 집안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다들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재산상속을 둘러싼 가족들의 전쟁을 지켜보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아버지의 유언은 장남인 형이 치매 환자를 허수아비처럼 이용해 만든 휴지다.” “동생들이 돈 욕심에 녹취록을 위조해가며 아버지와 형을 모함한다.” “형은 술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도 욕심을 부린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혼소송이다. 사랑해서 함께 살고 아이를 낳아 키운 부부가 서로를 인간 망종으로 몰아간다. 하루는 아이 고모들이 증인으로 나와서 애 엄마가 얼마나 사치스럽고 애들한테 무관심한 탕녀인지 목청을 높이고, 하루는 아이 이모들이 증인으로 나와서 애 아빠가 지독한 알코올중독자에 폭력배라고 호소하며 운다. 요즘에는 서로 아이를 떠맡지 않겠다며 싸우는 젊은 부부도 늘어간다. 새 출발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소년 사건은 또 어떤가? 동급생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앳된 아이의 입에서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섬뜩한 말이 튀어나온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자녀에게 “의사가 돼라”며 과외를 시키고 학원으로 돌리며 강박증 환자처럼 몰아세운, 하지만 “애를 너무나 사랑해서였다”며 우는 엄마를 말이다. 나는 법정에서 마주치는 일들을 토대로 <미스 함무라비>라는 소설을 썼다.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혼소송 과정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엄마가 외도를 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려 한 아빠 얘기다. 재판장은 이에 분노하고 아빠는 호소한다. 아빠는 고아로 자라 언젠가 과수원을 하면서 마당 넓은 집에서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는 꿈을 꾼다. 애들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잠자리를 잡고 나비를 쫓으며 살겠다는 꿈을 위해 그는 중장비를 몰고 공사 현장을 누비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지친 아내는 외도를 하게 되었고, 분노한 그는 자기가 애들을 키우겠다며 이혼소송을 냈지만 애들은 엄마의 품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다음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판결 선고 날, 한세상 부장판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읽으려던 판결문을 내려놓고 원고를 쳐다보았다. “원고의 둘째 딸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요?” 원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다. “벌레래요. 나방이 제일 무섭지만, 다른 벌레도 모두. 그럼 첫째 딸의 요즘 소원이 뭔지 알아요?” “…” “에이핑크 공연 보러 가는 거래요. 단짝 넷이랑. 솔직한 심정은 박보검 닮아서 인기 ‘짱’인 옆 반 반장도 같이. 가사조사관이 애들과 금세 친해졌더군요. 두툼한 보고서 읽느라 재판부가 고생 좀 했어요.” 한 부장은 원고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하나의 새로운 세계예요. 원고가 평생 꿈꾼 마당 넓은 시골집은 아름답지만, 아이들의 꿈은 아니에요. 아이들은 이미 자기 세계 속에서 자기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고 훌쩍 커버리지요.” 원고의 송아지 같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부장은 촉촉해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며 나지막이 말했다. “원고, 미안합니다. 원고는 자신의 고통 때문에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줄 마음의 여유까지 잃은 것 같습니다. 지금 법이 원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법보다 훨씬 현명한 시간의 힘이 이 가정의 상처를 치유해주길 기도할 뿐입니다.”

행복에는 어떤 정답도 없다. ‘행복이 가득한 집’은 킨포크 스타일도, 노르딕 스타일도 아니다. 정답은 없지만 출발점은 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타인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부부도 부모 자식도 서로 다른 궤도를 따라 돌며 가끔 만나는 독립한 별이다. 그걸 서로 인정한다면 세상에는 은하수만큼이나 많은, 서로 다른 모습의 행복한 가정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삶의 모습과 그 역사가 제각기 다른 개인이 모여 ‘모두 모습이 비슷’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서울동부지법 문유석 부장판사는 재판을 통해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는’ 집안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며 행복한 가정이라는 어린 시절의 꿈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것인지 깨닫곤 합니다. ‘가족 서로가 타인임을 인정하는 것’을 행복한 가정의 출발점으로 제안하는 이 글은 집단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 개인주의자’를 자임하는 그답습니다. 소년 시절, ‘좋아하는 책만 잔뜩 쌓아두고 섬에서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책을 좋아한 문유석 부장판사는 재판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틈나는 대로 글로 씁니다. 지은 책으로 소설 <미스 함무라비>와 에세이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유감>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