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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사람이 중심이다

나는 지난 4월 초순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박물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했다. 사람들은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갖는다. 왠지 자연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연 친화적이며 지구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가 보다.

내가 요즘 주로 하는 강연 제목은 ‘공생 멸종 진화 -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살아남기’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호의를 충분히 이용한 강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공생’이란 단어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연은 물론이고 인간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강연 중 공생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잠깐만 나온다. 이것은 정작 하고 싶은 ‘멸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미리 깔아놓는 안전지대에 불과하다. 그리고 ‘진화’는 뭔가 미래 지향적인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다. 그러니까 결국 멸종을 이야기하기 위해 공생과 진화라는 말을 빌린 셈이다.

멸종이라는 말을 듣고서 마음이 편해지거나 신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은 교사, 공무원, 목사, 스님 같은 직업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멸종이야말로 지구 생명체 진화의 원동력이다. 멸종이란 어떤 생물 종이 생태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이 등장해 그 자리를 채운다. 그게 진화다. 하나의 틈새를 서로 나누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멸종은 인류가 당하는 일만 아니라면 꼭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멸종 속도가 생태계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빠르다는 게 문제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인상은 평화와 공존이다. 하지만 과연 자연이 평화로운가?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리지 않는 자연은 지구에 없다. 바닷속 물고기들은 지금도 어떤 놈들을 쫓으면서 동시에 다른 놈에게 쫓기고 있다. 단 한시도 평안할 틈이 없다. 처절하게 먹고 먹히는 곳, 그게 바로 자연이다. 내 강연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조밀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인류가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끝난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는 부끄럽지만, 나는 재미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내 강연은 재미있다. 멸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강연장에는 내내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그런데 질의응답 시간부터 분위기가 험악하게 바뀔 때가 있다. 단지 내가 자연사박물관장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내가 강화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질문하는 청중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MSG로 오염되는 우리 식탁을 정화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무엇을 하나요?” “화학비료가 없어도 분배만 잘하면 식량난은 해결되지 않나요?”

나는 훈훈한 분위기를 끝까지 이어가면서 청중들로 하여금 내 책을 구입하게 하는 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과학자다. 전 세계 과학자가 동의하는 덕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정직’이다. 차라리 침묵할지언정 양심에 어긋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과학자의 양심을 걸고 이야기하건대 MSG는 우리 건강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냥 아미노산이다. 우리는 이미 한 세대 이상 GMO를 먹고 있으며 어떠한 위험성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먹는 농산물은 모두 이미 유전자가 변형되었다. 단지 그 과정이 실험실이 아니라 밭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 가운데 그 어떤 것도 1만 년 전의 모습 그대로인 것은 없다. 유기농만으로는 이 세상 사람을 충분히 먹일 수 없다. 먼저 분배 문제를 해결한 다음 화학비료를 탓해야 한다. 인공적인 것 없이 우리는 자연을 누릴 수 없다.

강연장 분위기는 이미 완전히 깨진 지 오래, 이때 누군가가 일어나 말한다. “나는 인간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인간만 없다면 지구는 정말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대답은 이렇다. “인간이 없는 지구, 자연, 우주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연과 우주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결국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자연과 우주도 아름답다.



얼마 전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1백8명이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 반대를 중단해달라는 내용이었지요. 내년 개관할 서울시립과학관의 이정모 관장 역시 이 글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때로 사실은 직관에 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사실을 이야기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정모 관장은 독일 본 대학교 화학과에서 곤충과 식물 사이의 소통을 연구했습니다. 안양대학교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재직하며 많은 이에게 자연과 과학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 <공생, 멸종, 진화> <달력과 권력> <나는야 초능력자 미생물>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