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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행복은 의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나의 평생 직업이었다면 글쓰기는 나의 평생 부업이었다. 늘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서 살아왔다. 새삼 하고 싶은 얘기가 따로 있을 리 없지만 문득 계제가 되면 정해놓고 하는 말이 생각났다. 지난 현충일에 어느 혼인식에 참석했다. 시퍼런 청춘은 그 자체로 축복이지만 예식장에서 축복의 말을 하게 되어 일찌감치 대갔다. 근자의 우리 문제점 중 하나는 과다한 미세 먼지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올봄에 감기를 앓았는데, 유난히 기침이 심했고 오래갔다. 동네 병원 의사도 미세 먼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일기예보 중에서도 미세 먼지 상황에 관심이 간다. ‘보통’으로 나오면 일단 안도하지만 ‘나쁨’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우 나쁨’도 적지 않다. 지난 현충일은 아주 드물게 ‘좋음’으로 나와서 혼인식의 주인공들을 축복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이 신랑 신부를 축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축복의 말을 하게 된 것은 신부의 어머니와 학교에서 만난 인연 때문이다. 역량 있는 작가로 인정받아 화려한 수상 경력이 있다. 자매를 반듯하게 길러내어 어머니로서도 모범 됨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축사란 것은 너무 짧고 간명하면 경망해 보인다. 반대로 너무 길고 장황하면 지루해진다. 여기서도 중용이 필요한데,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그 실천은 매우 어렵다. 축가가 두 차례 예정되어 있으니 축사는 5분 정도가 좋겠다고 진행자가 귀띔을 해주었다.

일반 통념과는 달리 짤막한 말이나 글이 어려운 것이다. 2백 자 원고지 스무 장짜리 글보다 열 장짜리 글이 쓰기 어렵다. 군소리가 없고 중요한 소리가 빠져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긴 얘기는 하지 않는 편이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부지중에 길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말을 하고 나면 무엇인가 미진한 느낌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혼인식장에서 축사를 할 때는 대체로 규격화된 내용이 동원된다. 그러나 규격화된 축사에는 진정성의 호소력이 결여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그때그때의 계제에 따라 거기 맞는 말을 하게 된다. 가정은 생물학적 경제적 단위일 뿐 아니라 교육적 단위로, 가정교육이 중요하고 훌륭한 가정교육은 부모가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해본다. 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기초가 되며, 근자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의 잔혹한 범죄는 대개 깨어진 가정에서 유래한다고 대담한 발언도 해본다. 또 외동만 낳으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러 형제가 경쟁하며 자라는 편이 낫다는, 어디선가 본 얘기를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은 행복해야 하며 부디 행복하라는 당부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알랭은 대학에서 제안하는 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평생 고등학교에서 가르친 개성 있는 인물이다. 그는 늘 칠판에다 ‘행복은 의무’라 쓰고 삶에서 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다음부터는 내 생각을 말한다. 행복한 사람은 주위 사람들도 행복하게 한다. 이에 반해 불행한 사람은 자신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마저도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과 불행은 잔기침이나 하품과 마찬가지로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아니 불행은 일종의 전염병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불행 지수가 높은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매개해야지 불행을 매개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행복이냐에 관해선 사람마다 의견이 구구할 것이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객관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먹을 걱정입을 걱정을 끊임없이 하는 처지라면 당사자가 아무리 행복을 자임한다 해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지나치게 욕심이 많고 위쪽만 바라보는 사람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순리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의 행복이란 구성원의 협동의 소산이요, 상호 존중과 사랑이 일구어내는 하나의 작품이다. 행복이란 자기 본분을 지키며 바르게 살 때 얻게 되는 부산물이다. 신랑 신부는 이 점을 명심하고 부디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두 사람은 반드시 효자와 효녀를 두게 될 것이다. 얘기를 끝내고 보니 미리 생각해 둔 ‘미세 먼지 상황이 좋음 상태인 것이 하늘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인생이란 안개에 싸여 있는 길이다”라고 썼습니다. 명확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채로 우리 는 모두 현재를 살아가지요. 그러니 주변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불안감도 함께 커집니다. 미세 먼지까지 혼탁한 요즘, 가장 기본이라 할 가정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의 글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1957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유종호 선생은 2006년까지 연세대학교 특임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며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등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최근엔 해방 전후 직접 겪은 바를 기록한 <나의 해방 전후> <그 겨울 그리고 가을> <회상기> 등을 펴내며 추상적 역사에 구체적 세목을 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