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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거울 볼 때는 안경을 벗는다

오늘은 내가 나를 인터뷰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감사하며 지내죠. 이 나이에도 출근할 수 있으니.”

“비결이 뭔가요?”

“제가 ‘인생’이라는 두 줄짜리 시(?)를 쓴 적이 있어요. ‘상 받은 자 옆에는 상처받은 자가 있다.’ 상 받을 땐 옆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죠. ‘다음엔 네 차례야.’ 그랬더니 복이 오더라고요.”

“요즘은 학교에 나가시죠?”

“직장 생활을 3등분하면 하나는 학교, 나머지는 방송사였어요. 학교에서 시작했는데 다시 학교로 돌아왔네요. 어떻게 보면 수업을 재미있게 하려고 오랜 기간 방송사로 견학, 아니 실습 갔다 온 거죠. 프로그램 짜듯이 수업하니까 교실 안의 시청률도 괜찮아지더라고요.”

“학교와 방송사 중 어디가 더 좋으세요?”

“행복에 등수를 매길 필요가 있나요? 전 점수만 매겨요. 종합 점수는 어디나 90점 줄래요.”

“후하시네요.”

“과목별로는 다르지만 합치면 언제나 90점 정도는 나와요. 어디서나 좋은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 좋은 사람들의 순위를 정한다? 그렇게는 못 해요.”

“학교가 댁에서 좀 멀지 않나요?”

“그래서 행복하답니다. 오래 걷고 음악도 길게 들을 수 있으니까. 전 사직동에 사는데 학교 가는 버스를 명동에서 타요. 그래서 늘 광화문 광장을 지나죠.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님께는 매일 인사를 드려요. 그 유명한 광화문글판도 매일 읽죠. 며칠 읽다 보면 외우게 돼요. 이번 가을엔 이런 말이 쓰여 있더라고요.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이 구절이 떠올랐어요. 스무 살 하버드대 학생 조셉 최(한국 이름 최민우)가 미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질문하는 장면. 이를테면 두 명의 문제아(?)가 만난 거죠. 한 명은 문제를 야기하고 한 명은 문제를 제기하고. 젊은이가 무척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용기는 분명 무언가를 사랑하는 힘에서 나온 거다 싶었죠.”

“광화문글판에서 읽은 것 중 또 생각나는 거 있으세요?”

“사람들 기억은 비슷한가 봐요. 설문 조사에서 나태주 시인의 ‘풀잎’이 1위를 했거든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런데 시와 현실, 아니 자연과 인간은 좀 다르죠. 제가 올해 환갑인데 동갑내기 친구들을 자주 만나요. 동창회가 아니고 자녀 결혼식장과 부모님 장례식장에서 보게 되죠. 그런 자리에서 어느 동창 녀석이 절더러 젊어 보인다는 얘길 하니까 짓궂은 친구 하나가 이래요. ‘자세히 보니까 얘도 많이 늙었네.’ 웃음이 터지면서도 약간 씁쓸하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장점은 자세히 보고 단점은 대충 보자고. 그래서 전 거울 볼 때 안경을 벗는답니다. 대충 보니까 아직은 괜찮더라고요.”

“혹시 광화문글판에 추천하고 싶은 시가 있나요?”

“요즘 남진 씨 노래를 자주 들어요. 그분 노래 중에 특히 ‘님과 함께’ 가사가 와 닿던데요.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행복의 기술이 고스란히 나와 있잖아요. 학생들에게도 ‘봄은 청춘이니 한숨만 쉬지 말고 부지런히 씨앗을 뿌려라. 그러면 가을에 풍년이 들고 겨울엔 행복할 거야’라고 얘기했어요.”

‘행복’이라는 단어만큼 우리 주변에 흔한 말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행복이란 신의 존재만큼이나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어서, 우리는 그렇게 책 속 한 구절에서, 유행가 가사 속에서, 드라마나 영화 대사 속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강의와 글을 통해 ‘행복’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전파해온 주철환 교수는 동북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MBC에서 PD로 일하며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와 소통했습니다. 그 후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OBS경인방송 사장과 JTBC 대PD를 거쳐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돌아왔습니다. 저서로는 <청춘>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