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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어두운 과거를 떠나 즐거운 현재로 오려면

60대 후반의 여성이 남편과 딸과 함께 외래 진료실을 찾았다. 앉자마자 속상한 과거사를 어제 일처럼 쉼 없이 30분 가까이 이야기했다. 가족이 “다른 환자도 보셔야 하니 다음에 또 와요”라고 하는데도 이미 한 이야기를 새 이야기처럼 또 했다. “언제 이 일을 겪으셨나요?”라고 묻자 가족이 “4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과거의 상처, 즉 트라우마에 갇혀버리면 몸은 현재에 있는데 마음은 과거의 괴로운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내 현재를 먹어치운다.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의 상당수는 타임머신이 고장 나서 과거로 가버린 후 현재로 못 돌아오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임머신이 자연스럽게 회복되어 현재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과거에 그대로 묶여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 타임머신은 점점 더 고장이 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내 삶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내 삶이 더 소중해진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힌 사람에게 기억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경험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런 불편한 기억의 재생이 반복되면서 트라우마는 뇌의 전체 영역으로 퍼진다. 연필로 쓴 기억은 쉽게 지울 수 있지만, 반복되는 부정적 과거 기억은 문신처럼 우리 뇌의 기억 시스템에 새겨진다. 그러다 보면 내 과거 전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트라우마가 현재를 망치는 과정은 내 과거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과거의 나쁜 기억은 부정적 과거 시간 조망時間眺望(time perspective)을 갖게 하고 이는 현재를 회피하고 두려워하는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현재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다시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면서 결국 현재를 비관적으로 보게 한다. 과거 한 번의 부정적 경험이 자신의 과거 전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것이 현재에 작용해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공포와 불안을 만들어 현재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은 곧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결국 밝은 미래가 없기에 부정적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오늘을 체념하게 만든다. 과거의 작은 트라우마가 내 뇌에 작용해 내 인생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실패할 운명으로 결정된 것처럼 왜곡해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보통 과거의 부정적 사건을 계속 떠올리면서 싸우고,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불안과 공포를 없애기 위해 애쓰는 등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부수적인 것이고 첫 고리부터 끊어버려야 한다. 바로 과거의 부정적 기억이 내 과거 전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과정을 끊어내야 한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과거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거나 의지를 갖고 부정적 생각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상징적 내용을 시각화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다. 예를 들면 먼저 한 발은 부정적 과거라는 모래에 빠져 있고, 다른 한 발은 체념해버린 현재라는 늪에 빠져 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모래에 빠진 과거의 발을 단단한 미래의 땅에 올려놓은 다음 그리고 늪에 빠진 발을 단단한 현재의 기쁨이라는 땅에 올려놓은 다음 두 발로 조금씩 걸어가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감성은 논리적 언어보다 상징이 담긴 이미지에 더 쉽게 반응한다.

또 다른 방법은 위축된 사회적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회피 반응은 사람을 홀로 있게 하고 부정적 생각에 더 빠지게 만든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도 과거에 좋은 기억이 있는 친구를 만나다 보면 과거의 긍정적 기억도 되살아나고 현재의 내 삶에도 무언가 긍정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후회하면서 인생의 말년을 보내는 어르신을 보면 안타깝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얼마 안 남은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엉뚱하게도 과거의 한 맺힌 기억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즐기기에도 아까운 일분일초를 통증만 느끼며 허비하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힘든 기억이 떠오를 때 그 연결 고리를 끊는 자신만의 시각적 방식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늘려보자. 즐기기에도 아까운 우리 생의 일분일초를 과거의 통증이 아닌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따뜻한 시간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과거의 나를 현재로 안전하게 데려오는 시간 여행의 중요한 법칙이다.

과거의 힘든 기억은 거울 앞에서 양치질할 때, 버스의 창가 좌석에 앉아 거리를 바라볼 때, 혼자 앉아 식사할 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기분을 망칩니다. 이처럼 일상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평소 우리 마음의 타임머신을 잘 관리하면 우리가 원할 때 생각의 블랙홀을 뚫고 나와 즐거운 현재에 도착할 수 있지요. 글을 쓴 윤대현 교수는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합니다. 또 매일 아침 MBC FM 라디오에서 <윤대현의 마음연구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유쾌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대중의 마음 건강을 돌보아주지요. <마음 아프지 마> <윤대현의 마음 성공> 등의 책도 펴내 우리에게 정신의학적ㆍ심리적 조언을 아끼지 않던 그는 최근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책을 펴내 대중과 더 가까이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