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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모네의 정원에 가보고 싶은 이유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죽기 전에 꼭 해보아야 할 일’에 관한 책도 많고 신문이나 잡지 기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여행지’나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명화와 명작’ 등 사실 인간이 죽기 전에 꼭 해보아야 할 일이 좀 많겠는가. 문제는 시간이나 돈이 개입되면 일이 순수한 소망대로만 풀리지 않는 데에 있다.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도 그런 일이 몇 가지쯤은 있으리라. 그중에서도 언젠가 여유가 되면 해보고 싶은 일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43세부터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꽃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지베르니 정원’을 방문해보는 것이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고 한다. 클로드 모네는 누구나 다 알듯이 인상파 최고의 화가이자 그 아름다운 ‘수련’ 시리즈를 그린 화가다.

나도 모네의 그림을 몇 번 보았는데, 두 방의 벽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큰 ‘수련’ 그림 시리즈가 두 개의 타원형 방에 걸려 있다는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가보지 못했다. 또 그 수련 그림의 모태가 된 지베르니 정원에도 못 가보았다. TV 프로그램에서 본 것을 떠올려보면, 오랑주리 미술관 두 개의 타원형 방에 걸려 있는 ‘수련’은 마치 그 공간 자체가 낙원인 듯 희고 푸르게 일렁이는 꽉 찬 햇빛 속에 물에 뜬 수련들이 환상의 약동처럼 빛나고 있었다. 광채의 호수, 마치 그 벽 전체가 햇빛 광채의 호수처럼 보였다. 햇빛이 물에 닿은 순간, 햇빛이 꽃에 닿는 순간, 그 순간의 덧없는 생동을 인상파 화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모네는 포착해내려 애썼다. 햇빛은 일렁이고 물은 반짝이고 수련은 덧없는 시간 속에 그 하얀 연약한 아름다움으로 피어난다. 그렇다, 아름다움은 연약하다. 물, 햇빛, 꽃… 그 아름다움은 더할 나위 없이 생동하는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지만 연약하고 덧없고 그래서 찬란한 것이 아닌가.

모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40대 초반에 지베르니에 들어가 혼신을 다하여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며 43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정원 속의 작은 집과 하늘이 비친 연못, 연못 속의 구름과 나무들의 그림자. 그곳에서 햇빛도 물도 전체 풍경도 다 보고 싶지만,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모네가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고 시골로 들어가 혼신을 다하여 직접 가꿨다는 그 정원에서 아직도 뿜어져 나올지도 모르는 영성靈性과 그 슬픈 영성에서 솟구쳐 오르는 반짝이는 불멸하는 생명의 약동이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해산물과 채소와 아보카도가 나온다는 ‘모네의 점심’도 먹어봐야지. 사실 언제 가볼지 아니면 영영 못 갈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나는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으로 현실의 중력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런 혼신을 다하는 슬픔의 극기가 ‘정원의 영성’을 만들고, 어느 공간이든 그 공간의 영성을 만든다는 사실을 믿어본다.

‘정원의 영성’이 문제라면 굳이 저 먼 모네의 정원까지 갈 필요가 있는가? 여름이 되면 하얀 수련, 붉은 홍련이 만발해 아름다운 연못에 떠 있는 무안의 백련지에도 가보고 싶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지베르니 공원이 특별한 정원의 영성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끄는 것은 그곳의 수련이나 물, 꽃, 나무, 햇빛이 유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이루는 데 혼신을 바친 모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백약이 무효인 어떤 슬픔으로 혼신을 다하여 이룬 것만이 결국 불멸의 광채와 그 감동의 파급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슬픈 것이 무한한 것을 이루고 하루의 노동이 불굴不屈을 만드는 것이라고.

올봄에는 소박한 꿈 한 다발을 마음에 품고 현실 너머의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보면 어떨까요? 글을 쓴 김승희 교수는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이자 유명 시인입니다. 1973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그림 속의 물’이 당선된 후 1979년에 첫 시집 <태양미사>를 필두로 지금까지 숱한 명작으로 우리를 지적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소설 ‘산타페로 가는 사람’이 당선되었으며, 시집, 산문집, 소설집을 넘나드는 무한한 작품 세계로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92년에 제5회 소월시문학상을, 2003년에 제2회 고정희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