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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차로 한 30분 가면 썩 좋진 않지만 산장이 있어. 거기 가서 잠시라도 눈 좀 붙일래?” 프로덕션 페가수스Pegasus의 프로듀서인 에이나르Einar가 내게 말을 건넸다. 이름도 생소한 나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도 자동차로 4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산정호수에 우리는 광고 촬영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그 ‘우리’에 황인종은 나 하나였고 미국에서 온 촬영팀과 현지에서 일을 진...
    2007.07
  • 내가 태어난 곳은 중구 정동 27번지 2호다. 정동극장에서 고려병원(현 강북 삼성병원) 쪽으로 20미터쯤 가다가 왼쪽 언덕을 올라가서 제일 끝에 있는 막다른 집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엄마 친구인 산파아주머니가 나를 받았다.    네 딸 중에 막내로 태어난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딸은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부산 출장 중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기대했다가 또...
    2007.06
  • 가끔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알량한 책 몇 권 펴내고 신문, 방송에 얼굴 팔린 덕분이다. 주변의 관심이 싫지 않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펴낸) 책과 사진을 사주어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동안 벌인 작업과 활동은 대중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알리는 좋은 방법인 인터뷰를 마다하지 못한다. 다만 수락 조건은 하나, 인터뷰 장소는 반드시 나의 작업실이어야 한다는 것. 상대의 불...
    2007.06
  • 소설을 업業으로 알고 살아가지만 가끔 꼭 시를 쓰고픈 때가 있다. 내면의 울림이 너무 커서 이야기로 만들 수조차 없는 순간, 언어는 낯선 감정을 물어 와서 집을 집고 그것을 ‘시詩’라고 부른다. 5년 전, 경상남도 마산에 있는 고향집을 판 후에도 한참이나 시 비슷한 것을 쓰고 또 지웠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5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후로 17년 가까이 고향집 문패에는 아버지 이름이 그대로 적혀...
    2007.04
  • 겨우내 명태 난젓과 안동식혜를 끊이지 않고 먹었다. 떨어질 만하면 택배가 왔다. 명태 난젓은 생명태를 무와 함께 난도질해 ‘갖은 양념’ 한 반찬이고 안동식혜는 일반 식혜를 끓이기 전에 고춧가루와 무를 버무려 삭힌 식혜다. 둘 다 시원하고 칼칼하고 입 안에서 아삭아삭 씹힌다. 먹을수록 인이 박인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 말고는 이런 음식을 아는 사람조차 없다. 손 많이 가는 이것들을 만들어 밀폐 용기에 담아 비닐...
    2007.04
  •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국어시험을 치렀다. 딱 하나가 틀렸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뜻을 잘못 적었다. 호초, 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에 비할까. 며느리는 그저 입 다문 채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하라는 옛 속담이 딸에게는 생경했던 모양이다. 빈 칸으로 남겨둘 수 없어 제 딴에 답을 적긴 했다. 딸의 답안지를 본 담임선생이, 속된 말로 뒤집어지더란다. 딸은 선생이 왜 웃었...
    2007.03
  • 작년 가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낙지만 잡았다. 대단한 집착 혹은 열정의 날들이었다. 낮에는 뻘밭에서, 저녁 술자리에선 낙지잡이꾼들의 경험밭에서, 밤엔 꿈밭에서 땀 흘리며 낙지를 잡았다. 한번 빠지면 된통 빠지는 성격이라 꿈을 꿔도 낚지 잡는 꿈만 꿨다. 시 쓰는 놈이 시 쓰는 꿈을 꿔야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낙지 잡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나는 그 매력에 독하게 중독되었다.“뻘...
    2007.02
  • 전철을 탔는데 좌석이 없어 서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어머, 선생님도 전철을 타세요?” “예. 저는 운전을 못하니까 주로 전철이나 버스를 타요.” 물론 나는 택시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철, 버스를 타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느낄 수 있어 참 행복했던 ‘첫’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전철이나 버스를 탄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 시간 두 시간 전에 ...
    2007.01
  • 하늘공원을 떠나며...부엌 창으로 하늘을 보았다. 아파트 뜰의 감나무에 성기게 매달려 있는 붉은 잎과 푸른 하늘이 명료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한 번만 더… 이렇게 중얼거리고 싶도록 아름다운 날은 짧디짧게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인생처럼. 뒤죽박죽인 우울한 옷장 속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알차게’ 주말을 보낼 것인가, 드물게 좋은 날 놀러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갈등을 길게 ‘때리고’ 있을 ...
    2006.12
  • 骨三穿이란 말을 한동안 화두로 들고 지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인 황상의 글 속에 나오는 말이다. 일흔이 넘어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메모해가며 책을 읽는 황상을 보고 사람들이 그 나이에 어디다 쓰려고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하느냐고 비웃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 스승은 귀양지에서 20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골, 즉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스승께서 부지런히 공...
    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