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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피소드 1 아는 사람이 모는 차를 타고 어딘가 가던 중이었다. 자세히 보니 차의 계기판에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용기가 하나 보였다. 나중에 붙인 것은 아니고 원래 그 차의 디자인이 그랬던 것 같았다. 무엇인가 물으니 차 주인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꽃병이라고 했다. ‘자동차 계기판에 꽃병이라?’ 잠시 의아했지만 순간 수많은 상상이 마치 봄날의 꽃처럼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그래, 만약 내가 이런 차를...
    2007.10
  • 그 잔인한 황제 ‘네로’조차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인정했을 정도였다는 데서 시선이 멈췄습니다. 역사 다큐멘터리였는데 그렇게 말하는 해설에 현장감을 더하려고 당시의 네로 분장을 한배우가 두루마리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것을 클로즈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로마군의 침략을 받은 그 지역은 땅을 몇 미터만 파고 내려가면 어김없이 불에 탄 나무와 회색 잿더미층이 드러나 마치 지층처럼 나타나...
    2007.08
  •   0 “차로 한 30분 가면 썩 좋진 않지만 산장이 있어. 거기 가서 잠시라도 눈 좀 붙일래?” 프로덕션 페가수스Pegasus의 프로듀서인 에이나르Einar가 내게 말을 건넸다. 이름도 생소한 나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도 자동차로 4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산정호수에 우리는 광고 촬영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그 ‘우리’에 황인종은 나 하나였고 미국에서 온 촬영팀과 현지에서 일을 진...
    2007.07
  • 내가 태어난 곳은 중구 정동 27번지 2호다. 정동극장에서 고려병원(현 강북 삼성병원) 쪽으로 20미터쯤 가다가 왼쪽 언덕을 올라가서 제일 끝에 있는 막다른 집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엄마 친구인 산파아주머니가 나를 받았다.    네 딸 중에 막내로 태어난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딸은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부산 출장 중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기대했다가 또...
    2007.06
  • 가끔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알량한 책 몇 권 펴내고 신문, 방송에 얼굴 팔린 덕분이다. 주변의 관심이 싫지 않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펴낸) 책과 사진을 사주어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동안 벌인 작업과 활동은 대중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알리는 좋은 방법인 인터뷰를 마다하지 못한다. 다만 수락 조건은 하나, 인터뷰 장소는 반드시 나의 작업실이어야 한다는 것. 상대의 불...
    2007.06
  • 소설을 업業으로 알고 살아가지만 가끔 꼭 시를 쓰고픈 때가 있다. 내면의 울림이 너무 커서 이야기로 만들 수조차 없는 순간, 언어는 낯선 감정을 물어 와서 집을 집고 그것을 ‘시詩’라고 부른다. 5년 전, 경상남도 마산에 있는 고향집을 판 후에도 한참이나 시 비슷한 것을 쓰고 또 지웠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5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후로 17년 가까이 고향집 문패에는 아버지 이름이 그대로 적혀...
    2007.04
  • 겨우내 명태 난젓과 안동식혜를 끊이지 않고 먹었다. 떨어질 만하면 택배가 왔다. 명태 난젓은 생명태를 무와 함께 난도질해 ‘갖은 양념’ 한 반찬이고 안동식혜는 일반 식혜를 끓이기 전에 고춧가루와 무를 버무려 삭힌 식혜다. 둘 다 시원하고 칼칼하고 입 안에서 아삭아삭 씹힌다. 먹을수록 인이 박인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 말고는 이런 음식을 아는 사람조차 없다. 손 많이 가는 이것들을 만들어 밀폐 용기에 담아 비닐...
    2007.04
  •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국어시험을 치렀다. 딱 하나가 틀렸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뜻을 잘못 적었다. 호초, 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에 비할까. 며느리는 그저 입 다문 채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하라는 옛 속담이 딸에게는 생경했던 모양이다. 빈 칸으로 남겨둘 수 없어 제 딴에 답을 적긴 했다. 딸의 답안지를 본 담임선생이, 속된 말로 뒤집어지더란다. 딸은 선생이 왜 웃었...
    2007.03
  • 작년 가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낙지만 잡았다. 대단한 집착 혹은 열정의 날들이었다. 낮에는 뻘밭에서, 저녁 술자리에선 낙지잡이꾼들의 경험밭에서, 밤엔 꿈밭에서 땀 흘리며 낙지를 잡았다. 한번 빠지면 된통 빠지는 성격이라 꿈을 꿔도 낚지 잡는 꿈만 꿨다. 시 쓰는 놈이 시 쓰는 꿈을 꿔야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낙지 잡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나는 그 매력에 독하게 중독되었다.“뻘...
    2007.02
  • 전철을 탔는데 좌석이 없어 서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어머, 선생님도 전철을 타세요?” “예. 저는 운전을 못하니까 주로 전철이나 버스를 타요.” 물론 나는 택시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철, 버스를 타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느낄 수 있어 참 행복했던 ‘첫’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전철이나 버스를 탄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 시간 두 시간 전에 ...
    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