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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 작가 무아리 감정의 모양을 본 적 있나요
세라믹으로 작업하는 무아리 작가의 작품에는 그가 그리는 유토피아가 담겨 있다. 고통을 순수한 춤의 형태로 승화시키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파고들어 여러 조각으로 분리해내는 방법은 작가가 내면으로 침잠해본 적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작은 방 안에 꾸린 무아리 작가 작업실. 세라믹 작품들과 스케치, 실험한 색소지가 빼곡하다. 이곳에서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무아리 작가. 그에게 작업은 즐거운 놀이다.

무아리 작가
는 덕성여자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도자디자인과를 휴학했지만 홀로 순수예술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 활발히 전시와 아트 페어에 참여하고 있으며, 오는 11월에 열리는 인천아시아아트쇼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내년 3월 스페이스결에서 개최할 개인전을 준비 중입니다.

무無의 유토피아
물 흐르듯 경쾌한 곡선으로 여성 신체를 표현한 도자는 무아리 작가의 시그너처 작업이다. 모난 곳 없이 둥근 형태에서 느끼는 경쾌한 움직임, 여성의 몸에서 전해지는 부드러운 태초의 에너지. 여린 들꽃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 무아리 작가에게서도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무아리 작가도, 그의 작품도, 겉보기처럼 그저 밝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다. 화사한 모습 뒤로는 심연이 있었다. “저는 무척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였어요. 하지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 늘 마음속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어요. 비옥하지 않은 토양에서 자란 나무니 뿌리가 계속 흔들릴 수밖에요.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문명화된 사회가 아닌 원시적 환경을 막연히 동경하게 되었고, 태초의 순수한 상태에 대한 상징으로 춤추는 원주민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원주민의 춤과 신체에 깃든 감정을 세라믹, 나무, 포맥스,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표현하며 유토피아에 대한 제 상상과 마음을 담았죠.”


‘감정의 조각들-치유1’, mixed media on wood, 52×60cm, 2021
많은 이가 어릴 때 불안해하는 이유는 많은 것이 정해지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 들어 대학에 들어가고 직업을 가지고 배우자를 만나 내 집에 살게 된다고 해도 드라마틱한 안정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도 불안은 잠시 작아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뿐. 밑바닥이 차지 않으면 무엇도 지속해서 쌓아 올릴 수는 없다. 무아리 작가는 어느 순간 마음속 깊은 우물 앞으로 다가가 어두운 속을 들여다보는 시도를 하게되었다.


작은 방 안에 꾸린 무아리 작가 작업실. 세라믹 작품들과 스케치, 실험한 색소지가 빼곡하다. 이곳에서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무아리 작가. 그에게 작업은 즐거운 놀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방황을 많이 했어요. 바라던 공예과가 아닌 실내디자인과에 진학하면서 순수예술에 대한 갈증을 안고 살았고, 바라던 대로 도자 디자인 대학원에 갔지만 현실 문제에 계속 부딪혔어요. 대학원을 그만두고 결혼을 하게 되어 작업의 끈을 붙잡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출산 후 우울증이 심해서 작업에서는 아예 손을 놓게 되었죠. 몸도 마음도 최고로 힘들 던 때였어요.”

작은 여백도 없이 시커멓게만 칠하고 있는 페이지를 가까스로 넘길 수 있게 해준 건 명상이었다. “몸도 마음도 극도로 힘든 시점에 우연히 명상을 접했고, 나를 제삼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며 내면의 감정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경험을 했어요. 해묵은 마음의 얼룩을 깨끗이 씻어내자, 비로소 다시 작업대 앞에 앉을 힘이 생기더라고요. 3년쯤 명상 생활을 지속하니 마음이 많이 치유되어 조금씩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2020년부터는 무아리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지요.”


사전 스케치 단계에 밑그림을 그리고 사용할 색 조합을 고심한 흔적.
없을 무無, 나 아我. ‘내가 없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의미가 담긴 활동명도 명상의 힘을 반영해 지었다. “그럼 이제는 석고 반죽을 하고, 표면을 다듬고, 색을 칠하는 과정이 또 다른 명상의 방법이 된 거냐”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오히려 작업을 시작한 후로는 명상을 하지 못해 욕망과 열정, 그에 따른 시기심과 질투, 미움 등의 감정이 다시 그득히 생겼다고.

“사람의 마음은 유리창과 같아서 매일 닦지 않으면 때가 끼어 탁하고 더러워져요. 지금 제 마음도 명상을 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흐려져 있죠. 하지만 지금은 작업을 하는 시간이 무척 행복해서 이대로도 괜찮아요. 그리고 이제는 마음속에 건강한 자존감이 자리 잡고 있어서, 부정적 감정이 생겨도 가지런히 정돈해둘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복잡다단한 감정은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요.”


명상을 하기 전에는 신체를 간결한 선으로 디자인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안료를 퍼센트별로 섞어 색소지 실험을 한 데이터를 두고 원하는 색을 골라 쓴다.

마음을 없애고 감정을 보다
무아리 작가는 명상에 심취하던 때에 몸과 마음의 실체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나의 윤곽이 사라지며 세상과 하나가 되는 의식은 작업 형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몸매가 둥근 여인들이 원시 리듬에 몸을 맡겨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황홀경의 순간(‘꽃이 피었습니다’ 시리즈)은 조금 더 내면으로 깊어져 몸도 없고 마음도 없이 감정의 실체가 조각으로 분리되는 감각(‘감정의 조각’ 시리즈)으로 확장된다.

“명상을 하면서 제 자신뿐만 아니라 작업 형태도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아이와 언니네 집에 머물던 때가 있었는데, 도자 작업을 할 수 없으니 종이와 연필과 가위만 들고 가서 형태를 오리고 조합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감정의 조각’ 시리즈 대부분의 아이디어 스케치는 그 시기에 완성되었죠. 우드록과 물감 덩어리로 작업하는 ‘감정의 조각’ 작품을 만들 때는 도자기 제작 과정의 번거로움과 색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하지만 수십 번 젯소칠과 사포질을 해서 손이 많이 가기도 하죠. 공예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마무리를 섬세하게 하는 걸 중요시하거든요. 채색 후 라인을 세밀하게 정리하고, 사포를 거친 것에서 고운 것까지 단계별로 사용하며 세라믹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어요.”

<행복> 10월호 표지 작품 ‘감정의 조각들-꿈꾸는 여인’은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원주민 여인의 신체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해보며 감정을 표현한 작업이다. 그는 명상을 하면서 몸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마음이 보이는 듯했단다. 누군가가 미울 때는 눈에 가시 같은 것이 쏟아졌고, 불만이 많을 때는 인중이 뻐근했으며, 걱정이 생기면 이마가 묵직해지고, 불안은 동글동글한 구슬 형상으로 보였다고. 그래서 욕망, 유희, 치유, 침잠 등의 특정 감정에 빠졌을 때의 느낌을 들여다보며 그 감각을 분리해 표현하는 ‘감정의 조각’ 시리즈를 채워가고 있다. 예를 들어 ‘감정의 조각들-욕망’은 인간의 감정 중 욕망을 조각으로 나누어 묘사한 것. 붉은 배경 위에 뜻 모를 기하학적 형체가 쌓이고 덮이며 웅성거린다. 각 형체의 표면은 광이 나기도 건조하기도 한데, 한 푸른색 덩어리 위에는 오돌토돌한 돌기가 돋아 있다. “욕망은 인간의 내면 가장 밑바닥에 깔린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욕망으로 인해 괴로움이 생겨나고 이는 시기와 질투, 미워하고 해하려는 마음으로 번지죠. 개인과 개인 간의 다툼, 국가 간의 전쟁도 결국 욕망 때문이잖아요.”


‘꽃이 피었습니다’3-3, ceramic on wood, 64×64cm, 2022
‘감정의 조각들-욕망’, mixed media on wood, 52×65.2cm, 2021
무아리 작가는 지금 집의 작은 방 한 칸을 작업실로 사용한다. 그가 좁고 누추한 공간이라 말하던 그곳은 사실, 너무도 완벽하고 아늑한 ‘자기만의 방’이 되어 무아리 작가가 자기 세계를 일굴 수 있게 하는 근거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 밖으로 나오면 남편과 어린 아들이 언제나 그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남편이랑 아들이 제가 도자 표면을 사포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쓸데없는 일 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어요. 하지만 작년부터 제 작품으로 전시하고 작품이 팔리기도 하니 이제는 인정해주고 있어요. 제가 지금 너무 즐겁고, 가족들도 언제나 응원을 해주고 있으니 어떤 장소나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작업을 계속 해나갈 거예요.”

멈추지 않는 열차에 올라탄 우리는 앞으로도 터널 속을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 들어가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하고 견디는지는 철저히 각자의 몫이다. 무아리 작가는 시련을 스스로 이겨낸 경험을 바탕으로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는 작업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그가 작업을 할 때만큼은 언제나 자기 삶의 일인칭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어떤 성장통도 기꺼이 마주하면서 더욱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글 박근영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