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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정수영 사물이 말합니다
순수한 기쁨을 느끼기에, 순수한 슬픔을 느끼기에 공적 공간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다. 갈망 말이다. 사적 공간, 그 속의 사적 사물을 밀도 높게 그리는 화가 정수영. 한쪽은 비밀을 만들고, 한쪽은 다 드러내는 그의 그림 속엔 갈망이 가득하다.

정수영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회화와 판화를,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2018년 영국으로 건너가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회화로 MA 학위를 받았습니다. 2016년 개인전 를 열었고, 한국과 영국을 넘나들며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정수영 작가에게 강력한 자외선 차단막을 유지해 피부를 보호하는 시세이도 더 퍼펙트 프로텍터 SPF 50+ PA++++와 클리어 선케어 스틱 SPF 50+를 선물로 드립니다.
그는 공간을, 그 공간에서 각시처럼 나만 기다리고 있을 사물을 그린다. 그 그림은 “마음을 열 열쇠 꾸러미를 이 사소한 사물에 주마”라고 말하는 것 같다. 평온한 일상 공간, 정물 같은 사물로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핀셋으로 잡아챈 것 같은 불안, 조바심도 공존한다. 하긴 사람의 삶, 어느 순간을 단지 일상이라 말할 수 있으랴. 누군가의 오늘 하루는 모두 ‘필설로 못다 할’ 어떤 것이다. 공간은, 사물은 필설로는 못다 할 누군가의 삶을 증명하는 법이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그림과 지금 그림이 매우 다르다.
2016년 첫 개인전 <바라밀다(Paramita)>에서 전시한 작품은 한 화면 안에 단청과 만다라와 아르누보 패턴, 돼지머리 같은 희생 제물, 사실적 묘사와 장식적 도안이 다 들어 있다. 한 치의 빈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화면에서 사람들은 불안과 강박마저 느끼곤 했다. 당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천도재를 올렸는데, 그게 내게 꽤 충격적 이벤트였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기도 했고, 당시 내 안에 쌓인 불안, 상처 같은 것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다. 2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경상도 절에서 재를 올렸는데, 그때 단청과 불교 문양을 공부하면서 그것이 자연스레 그림에 등장했다. 패턴을 그리는 것이 내겐 일종의 명상, 수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붓질로 화면을 채우며 “불 안해하지 마” 속삭이던 그 그림에 ‘바라밀다波羅蜜多(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라는 제목은 필연이었다.

첫 개인전 <바라밀다>에서 전시한 그림. 만다라도, 스테인드글라스도 떠오르는 묘한 그림이다. 희생 제물 같은 돼지머리가 한가운데 자리 잡 고 있다. ‘Hello Mr. Boxer’, acrylic on canvas, 150×150cm, 2015.
‘바라밀다’는 그리면서도 꽤 무거웠겠다.
무거웠다. 신화와 제의, 죽음과 내세, 성과 속, 피안과 불안이 공존하는 그림이니까. 아무리 공부하며 그렸다 해도 무겁기는 매한가지였다. 젊은 작가가 다루기 힘든 주제라는 걸 깊이 자각한 건 전시를 보러 온 스님들의 몇 가지 질문 때문이었다. 단지 지식으로 메우기에는, 그 지식만으로 내가 알고 있다고 하기에는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었다.

괴로움을 끊기 위해서는 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기도는 자신의 등뼈를 세우는 일이다. 중심 잡힌 마음이야말로 본래 자기다. 2016년 당시, 20대의 정수영에게 그 등뼈는 그림이었고, 화가 정수영에게 그 기도는 화면을 메운 도상이었다. 그거면 족하다.

그러다 영국으로 떠났다. 이후 그림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도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긴 힘들겠다 싶어서 학원을 운영하며 그림을 가르쳤다. 휴가 때 영국에 갔는데, ‘이곳에 살아야겠다’라는 말도 안되는 끌림이,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2016년 영국에 유학했고, 처음 독립 생활을 시작했다. 30년 동안 세제 하나도 내가 선택한 적이 없구나, 이제야말로 일상을 내가 선택하고 통제해야 할 때구나 싶었다. 일상을 사소한 물건으로 채우며 해방감·집중력 같은 걸 느꼈고, 그때부터 내 그림에 사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싼 값 주고 찰스&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엘리펀트 스툴을 구입했는데, 용도도 불분명하고 사람보다 사물이 주가 되는 상황이 흥미롭게 느껴져 그림을 그렸다. ‘Elephant Castle’, acrylic on linen, 100×100cm, 2019.
그림에 식물이 많이 등장한다.
처음 그림에서 식물은 공간을 채우는 부수적 존재였다. 그런데 실제 식물이 자라는 속도처럼 그림 속에서도 자라더니 어느새 주연이 되었다. 시스템 선반에 놓인 사물을 그린 연작에서도 식물은 주된 목소리를 낸다.

6월호 표지 작품에서도 식물은 주연 같고 조연 같다.
외할아버지가 여행 다니면서 골동품을 모으셨는데, 돌아가신 후 부모님이 이 장식장을 물려받았다. 우리나라 분재와 해태상, 서양의 식물과 사물이 섞여 있는데, 사실 이게 내 뿌리가 아닐까, 2018년(이때 그렸다) 한국과 영국을 넘나들며 사는 내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이번 표지 작품 ‘Grandpa’s Cabinet’으로 이어졌다. 이 그림은 내가 오브제를 그리는 시작점이 됐다.

그렇다면 화가 정수영의 공간은, 사물은 무엇을 발언하나.
홈 파티를 즐기는 런던 사람들 덕분에 타인의 공간을 자주 들여다보게 됐다. 공간을 살피면 그 사람의 성향도, 그가 속한 공동체의 특징까지도 알 수 있다. 즉 어떤 공간과 그 안의 사물은 개인의 초상화이자 사회적 거울이더라. 더 흥미로운 건 사적 공간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보아줄 이를 의식하며 사물을 진열한다. 내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선반 위 사물이 그런 거다. SNS만큼 이 시대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게 디터람스가 디자인한 비초에Vitsoe 선반이다.

묵언의 사물이 건네는 밀어, 그 밀어로 가득찬 공간. 한쪽은 비밀을 만들고 한쪽은 다 드러내는 아이러니라니!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이루는 이 복잡다단한 것들이여.

팬데믹으로 단조롭고 폐쇄된 일상을 보낸 2020 화가 정수영의 일상을 담은 ‘My December 2020’ 일부분, acrylic on linen, 150×150cm, 2020.
그림 속 공간과 사물은 마냥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데.
‘My December 2020’이란 작품(오른쪽 그림)을 통해 설명해볼까. 가운데 선반은 실제 내 선반 모습인데, 팬데믹으로 집-작업실-집을 오간 내 일상이 그림에 고스란하다. 바이러스 좀 막아달라는 마음으로 배트맨 피겨를(말하자면 ‘박쥐 바이러스’니까) 선반에 두었다. 타버린 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갔다는 증거이고, 감시 카메라는 식구가 된 강아지의 존재 증명이다. 빈 액자는 추억할 것이 없는 2020년을, 책 는 ‘여성 작가로서, 35세 자연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투영했다. ‘Please Handle with Care’란 작품도 이야기해볼까. 선반에 테라리엄 두 개가 놓였는데, 아담과 이브가 들어 있는 테라리엄은 순수의 시절을, 살인 사건 현장이 묘사된 테라리엄은 부조리와 극악한 인간성을 보여준다. 달항아리에 ‘fragile’ 테이프가 감긴 것은 파손된 채 컬렉터로부터 반송된 내 작품을 표현했다. 조심히 다뤄달라고 써 붙이기까지 한 그 물건처럼 누구든 조심히 다뤄야 하는 존재였다는 메시지, 내가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성장이란 자신이 서 있는 공간과 시간을 자각하는 것이다. 성장하려면 일생을 통해 자신의 껍질을 그때그때 벗어야 한다. 순간순간 주어지는 삶의 무게를 잘 벗어놓아야 한다. 순조롭게 탈피를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바라밀다를 좇던 화가 정수영이 누군가의 사적 공간과 사물을 좇는 것. 그는 자기 삶의 무게를 때맞춰 내려놓는 중이다. 그러므로 둘은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