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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 예술가 갑빠오 적당한 관계 맺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새, 강아지, 고양이, 사람이 탑처럼 쌓여 있거나 등에 업혀 있다. 말간 아이 그림 같은데 제주 섬의 바람처럼 고적한 색이 바탕에 맴돈다. 관계와 소통에 대한 단상을 담고 있다는데….

갑빠오 작가는 이탈리아 브레라 국립미술대학교에서 장식미술을 전공했습니다. (가나아트에디션, 2015), (노블레스 컬렉션, 2017), (롯데갤러리 잠실, 2018),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아뜰리에아키, 2020) 등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체이슨 호텔, USM, 삼성 갤럭시 등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흙으로 빚은 도자 작품, 회화, 가구,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는 갑빠오 작가. 그리고 반려묘 태양이.


‘Two-way’,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72.7×90.9cm, 2020.
‘혼자뿐인’ 한 인간이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눈앞은 자유롭게 트여 있으나, 실상은 격리된 섬같은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을까? 날개도, 노도 없는 우리가. 갑빠오라는 유다른 이름의 이 작가는 ‘Soul Mate’ ‘가족’ ‘My Hometown’ ‘오래된 기도’ 등의 제목이 붙은 작품으로 사람, 관계, 소통을 이야기한다. 아니, 그러하다고 전시 도록에 쓰여 있다. 그런데 사람의 세상에서 소통, 위로, 합일 따위가 애초부터 가당한 것일까.

갑빠오가 본명은 아닐 텐데.
내 이름은 고명신이고, 갑빠오Kappao는 활동명이다. 이탈리아어 방식으로 고Ko를 읽을 때 K는 ‘갑빠’, O는 ‘오’라고 발음한다. 이탈리아에서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쓰던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탈리아에는 왜 갔나?
한국 대학에서 사회학과를 2년 정도 다니다 문득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가?’란 생각이 들었다. 도자기공예과에 다시 들어갔고, 졸업 후 갤러리에서 2년 정도 일했다. 작가들 작업실에 드나들면서 내 안의 뭔가가 ‘꿈틀’했다. 스물아홉 살에 미련 없이 이탈리아로 떠났고, 브레라 국립미술대학교 장식미술과에 들어갔다. 회화, 사진, 공예, 조각, 판화 등 경계 없이 여러 장르를 경험했다. 아, 그 학교에 도자기 장비가 없어서 도예 수업만 못 했다. 1, 2학년때는 ‘예술은 심오해야 하는 것 아닐까’란 쓸데없는 강박에 휩싸이다 보니 재미가 없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내가 아는 일, 스스로 느끼는 ‘내 이야기’를 해보자 싶었고, 강의실에 버려진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을 설치한 것이 첫 작업이었다. 그때 교수님이 “이제 널 찾아가나 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7년 동안이 크나큰 자양분이 됐다.

청맹과니 같은 질문 하나 하자. 도예가인가? 화가인가?
흙의 수더분함, 그 흙을 매만지는 손끝 감각, 가마 속에서 의도치 않게 벌어지는 우연이 다 좋다. 한국에 돌아와서 흙을 소재로 한 도자 작업에 집중하면서도 회화, 조각, 설치 등 여러 매체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2018년 개인전 를 기점으로 세라믹 아트 퍼니처(스툴)도 선보였고, 목재 가구도 만들었다. 여러 소재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해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람, 개와 새, 사람 얼굴의 개, 개 얼굴의 사람, 돌탑처럼 쌓은 얼굴들…. 그가 그림으로, 도예 오브제로, 나무 조각으로, 설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도상이다. 그들은 멍하거나, 눈치를 살피는 듯 첨예한 표정이거나, 무관심과 호기심 사이 어디쯤이거나, 즐거운 듯 지루한 듯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이건 우리 누구에게나 있는 삶의 디테일이다. ‘행복 vs 불행’ ‘화목 vs 불화’ ‘따로 vs 함께’ 같은 가르마질이 애당초 불가능한 게 삶이니까.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으려면 인간을 고루 이해해야 한다.

‘My Hometown’,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116.8×91cm, 2020.

‘Solo Series’, 세라믹에 채색, 22×15×60cm, 2014.

‘생각은 자란다#5’, 세라믹에 채색, 22×15×54cm, 2020.
가족, 동료, 익숙한 공간이나 사물,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바람과 흙과 태양 같은 것들. 그들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섬처럼 흩어져 존재하지만 모두 나를 둘러싼 관계이고 소통하는 대상이다. 이런 숱한 관계 속에서 고독, 이질감을 느끼기도, 또 다른 나를 발견하며 물들어가기도 한다.

일견 동화적, 순수성, 낙천성 등을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쓸쓸함, 외로움, 미성숙 같은 게 읽혔다.
도상들의 묘한 표정이 나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색감을 봐도 그럴 것이다. 나는 색을 직관적으로 쓰는데, 환한 색 언저리에는 쓸쓸한 색이 늘 깔려 있다. 본래 나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편이지만, 고향 제주의 쓸쓸한 바람 같은 정서도 내 안에 박혀 있다. 2015년 작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유쾌한 듯 보이지만 불쾌하지 않을 뿐이고, 행복해 보이지만 불행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정체 불명의 표정을 한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 나 혹은 당신의 얼굴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갑빠오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언가.
중간 스펙트럼 정도의 감정이 행복 아닐까. 너무 재미있고, 너무 신난다고 행복일까. 너무 슬프고, 너무 우울하다고 불행일까. 그 사이 중용의 상태가 행복 아닐까.

작품에 소통과 관계를 담았다는데, 갑빠오의 작품 속 관계들은 그러저러한 클리셰 대신 좀 다른 걸 말하는 것 같다. 2018년 전시 도록에 이토록 의미심장한 문장이 쓰여 있더라. “외로움이란 단어는 반대말이 없다.”
가족, 동료, 익숙한 공간이나 사물, 반려동물, 바람과 흙과 태양 같은 것들. 그들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섬처럼 흩어져 존재하지만 모두 나를 둘러싼 관계이고 소통하는 대상이다. 이런 숱한 관계 속에서 고독과 이질감을 느끼기도, 또 다른 나를 발견하며 물들어가기도 한다. 2018년 개인전 제목 는 이런 숱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온 것이다. 말 그대로 작은 숲의 생물들처럼 누구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로, 그리고 함께 살아가지 않나. 나를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나를 보호하고 보듬을 시공간은 마련해두는 ‘적당한 관계 맺기’.

그의 집 문짝, 바닥 타일 모두 갑빠오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갑빠오가 버려진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는 초기 작업의 연장선인 ‘Nobody knows me’, color on wood, magnet, 가변 설치, 2010.

가출한 반려묘 봄이를 찾으러 다니다 바로 옆 미타사와 보문사 근처 돌탑을 보고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는 ‘Hookup’ 시리즈. 그의 작업실 마당을 돌탑처럼, 솟대처럼 지키고 있다.

지나가는 이들이 유치원 부속 건물인 줄 안다는 갑빠오의 작업실 겸 집. 실제로 바로 옆 건물이 유치원이다.
미타사와 보문사 사이, 유치원 옆집에 산다. 사는 장소가 작품에 영향을 끼쳤나?
당연히! 서울 한복판인데 아침이면 종소리, 목탁 소리, 까르륵까르륵 아이들 웃음소리가 마구 몰려든다. 작품이 따뜻하고 밝아졌다면 나이도 보탬이 됐겠지만, 이 동네와 이 집이 팔구 할은 도왔을 것이다. 구체적인 작품 소재가 이곳에서 나오기도 했다. 반려묘 봄이 가출해서 석 달 가까이 찾으러 절로 숲으로 헤매고 다니다, 염원을 무더기 무더기 쌓은 돌탑을 봤다. 서로 다른 표정과 크기의 얼굴들이 순서 없이 자유롭게 쌓아 올려진 ‘Hookup’ 시리즈가 이때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들의 모습을 읽는 이도, 어떤 순서 없이 자유롭게 쌓인 인연의 기둥을 읽는 이도 있다. 보는 사람 마음이다.

묻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이것 하나였다. 당신의 이야기란 게 대체 뭔가?
내 작업도 소중하지만, 그만큼 내 삶도 소중하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화목이든 불화든, 고독이든 소통이든 그 사이 내 좌표를 찾아가는 일이 줄타기 같지만 밸런스를 찾아가는 것. 그게 내 경우엔 익숙한 공간, 사물, 일상을 살피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렇게 관찰한 표정과 몸짓을 다양한 재료의 오브제로 담으면 작품이 된다. 말 그대로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라는 것이 내 이야기다.

누구도 사람 사이를 건널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날개도, 노도 없이 태어났으니.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양 끝을 이어주는 줄 같은 게 있어 섬 이쪽에서 파르르 떨면 섬 저쪽에서 파르르 진동을 느끼는 게 아닐까. 갑빠오의 작품은 위로하려 들지도, 희망차게 살라고 독려하지도 않는다. 끊어진 건 아니지만 간격이 불규칙한 점선 같은 관계 이야기를 건넬 뿐이다. 한편 말갛고 한편 쓸쓸하게.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