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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변대용 수수께끼 속 희망

변대용 작가는 1972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부산대학교 미술학과(조소 전공)와 동 대학원 석사와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0년 중앙미술대전 특선, 2010년 송은문화재단 선정 작가, 부산청년작가상을 수상했고, 2007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고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동의대 대학원에 출강 중이다. 

‘아이스크림을 옮기는 방법’, FRP, 우레탄 페인트, 450×250×250cm, 2015
먼저 이 우화를 한번 살펴보시길.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는 백곰, 기념비처럼 장대한 미키 두상 뒤로 잔인하게 살육된 쥐와 주위에서 숙덕거리는 쥐, 미키의 탈을 쓴 생쥐와 키티의 탈을 쓴 고양이의 정면 대치…. 이건 곰 세마리가 한집에 있고, 아빠 곰과 엄마 곰과 아기 곰이 명실공히 제 몸값을 다하는 동화 속 세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살갗이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백곰이 파스텔 톤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으며 털어놓은 건 ‘인생이란 게 원래 얼마나 많은 향을 내도록 되어 있었는지’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변대용의 조각이다. “빙하는 녹아내리고, 백곰의 ‘제자리’는 점점 사라져버렸죠. 그렇다고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고요. 자기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자연스레 머물러야 할 제자리에서 뚝 떨어져 나온 사람의 세상을 빗댄 것이니 우화라고 할 수 있겠죠. 아이스크림은 고단한 그들에게 제가 건네는 위로의 음식이고요.”

 ‘호기심 많은 미키’, FRP, 우레탄 페인트, 600×600×400cm, 2011 
조약돌처럼 미끈한 형태에, 대중이 열광하는 팝 컬러에, 캐릭터로서 됨됨이까지, 그야말로 보암직한 쇳덩어리들로 그는 자신만의 우화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미키로 대표되는 쥐의 세계에는 귀여움 이면의 폭력성과 군중심리를 슬쩍 집어넣는다(‘미키’ 시리즈). 유기견이 보호 중인 유기인(‘유기견과 유기인’), 생선처럼 머리ㆍ몸통ㆍ꼬리로 나뉘어 소비 능력과 취향으로 구별받는 사람이란 덩어리들(‘The chunk’) 또한 그러하다. 이들 하나하나가 소비사회의 이면, 권력 구조, 몹쓸 경쟁 따위를 감추고 있단다. 우화, 그 사람보다 사람다운 이야기, 짐승보다 짐승다운 이야기에 우리는 절망하고 또 희망한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서도 매한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다름 아닌 자타 공인 이야기꾼 작가의 능력이기도 하다.

“워낙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만화책을 보며 겨우 한글을 깨쳤는데, 문맹 시대에 고대인이 벽화를 보며 상상한 것처럼 저는 만화의 말풍선 속 이야기에 몰입했어요. 9남매의 대가족에 사로잡힌 삶도 늘 무언가 웅성거리는 듯한 작품, 경험담으로 채운 작품을 만들게 했고요.”

그의 작품 속 경험담은 이런 것들이다. 8백 평 가까이 되는 부산 아트팩토리 (그가 입주해 있던)에 출몰한 쥐 한 마리와 “때려잡자”로 떠들썩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쥐와 인간의 권력 구조, 터부와 광기를 읽어냈다(작품 ‘키티와 미키’의 시작점). 작가로서 한창 갈증이 날 때 떠난 인도 여행에서 만난 사원의 탑에서는 사리는커녕 번민도 해탈도 없이 그저 익숙하게 규정된, 최고를 지향하는 최고의 결정체를 보았다(기념비적 미키 두상 뒤로 살육과 음모가 가득한 ‘수상한 미키월드’의 시작점). 대수롭지 않은 일상에서 세계 인식의 서사와 상징을 발굴해내다니 참으로 이야기꾼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숨긴 것이 무엇이든 그의 조각은 한없이 반드럽고 갸륵하다. 그는 FRP나 PVC 같은 플라스틱 소재를 장인적으로 마름질하고, 우레탄 도장이나 자동차 도색 같은 것으로 빈틈없이 착색한다. “무엇이든 궁극에 달하려면 반복이 필요하죠. 부지런히 다듬는 행위는 기도나 탑돌이 같은 종교 행위와 비슷한 것 같아요. 수행하듯 생각을 비우고, 굉장히 반복적으로 표면을 연마합니다.”

그렇게 그가 닦아낸 그의 조각은 세상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 시치미 뚝 떼고 빛난다. 하지만 참말 속 거짓말 같은 수수께끼를 제각각 품고 있다. 수수께끼의 문제점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가 깔아놓은 수수께끼의 힌트를 찾아낼 수 있다.

‘너는 나다, 나는 너다 1’, 합성수지에 자동차 도색, 165×350×130cm, 2010 
“그게 이야기꾼에게 놓인 함정이기도 하죠. 서사적이고 서술적이라는 건 1차원적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처음엔 그것 때문에 미술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그땐 그게 현대적이지 못한 개념으로 보였고, 난 미술적 담론을 제시하지 못하는 작가이고, 무의미한 것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회의했으니까요. 그 격랑의 시기를 겪은 후 ‘어디에도 정답은 그리 없더라’ ‘누구의 즐거움도 아닌, 나의 즐거움에서 시작하자’라고 생각하게 됐죠. 한계를 조금씩 딛고 올라가면 되지 않나 싶었죠.그게 ‘스포츠’ 시리즈(2010년 개인전 <너는 나다. 나는 너다> 에서 선보인)의 시작점이 됐고요. 쓰러진 권투 선수의 눈물, 높이뛰기에 실패한 사람의 순간, 내적 싸움 중인 장애인 선수를 포착한 조각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는 사람들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찌 됐든 뛴다’, FRP, 우레탄 페인트, 1700×1300×110cm, 2010
이번 표지작 ‘어찌 됐든 뛴다’는 ‘스포츠’ 시리즈 중 하나로, 원래 거꾸로 뒤집힌 채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이다(표지 이미지는 작가와 상의한 후 독자의 희망과 행복을 희구하는 마음으로 위아래를 뒤집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선수들의 신발과 유니폼이 극명히 상징) 스포츠 세계에서 예술 세계의 한 끝을 보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며 과정에 집중하는 이들의 땀을 살피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어찌 됐든, 뛴다’!

미키든, 백곰이든, 의족을 신고 달리는 허들 선수든, 거꾸로 뒤집힌 채 뛰는 사람이든 그들의 삶은 불완전해 보인다. 사실 모두 소통과 위로가 필요한 이들인 것이다. 조각가 변대용은 그들을 번쩍번쩍 빛나도록 매만지고 마름질하며 위로한다. 모름지기 위로와 위안이라는 건 김남조 시인의 시 같아야 할 것이다. “겨울나무 옆에 나도 나무로 서 있다, 겨울나무 추위 옆에 나도 추위로 서 있다.” 그가 작품에 심어놓은 서글픈 우화 속에서도 우리가 희망 한 줌을 찾을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글 최혜경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