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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매듭 작가 김희수 무한대의 손길에서 태어난 하나의 세계

김희수 작가는 1967년생으로 서울여대와 동 대학원 공예학과를 졸업했다. 프랑스에서 열린 <한국문화원 초대전> <동양의 신비전> <코리아 컬처 국제 공예 작가전>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국 전통 혼례 문화의 아름다움전>에 참가했다.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과 동상을 수상했고, 무형문화재 김은영 매듭장 전수자로 전통 매듭 공예의 대를 이어가고 있다.


“매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럴 때 가장 안타깝죠.” 김희수 작가는 전통 매듭 무형문화재 김은영 선생의 첫 번째 매듭 공예 이수자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섬유조형을 전공한 그지만 매듭을 처음 시작한 건 큰아이가 네 살 무렵, 시어머니의 권유로 간송미술관에서 김은영 선생을 만나면서부터다. ‘매듭’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다가 매듭 맺는 것을 배우고, 실을 염색하는 것을 배우고, 실을 한 올 한 올 모아 끈목 만드는 것을 배우고, 주머니를 만들었다. 옛것을 너무 모르는 자신을 돌아보며 전통 매듭을 손에 익혀가는 사이 10년 세월이 흘렀고, 무형문화재 김은영 선생의 이수자가 되었다. 아이들이 커가며 살림과 작업을 병행하기 힘들어 손을 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흔들림을 잡아준 건 스승의 한마디였다. “선생님께서 ‘나는 세 번 그만두었다가 세 번 다시 시작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섬유조형을 전공하며 염색 작업, 태피스트리 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그나마 거부감 없이 전통 매듭을 꾸준히 배울 수 있었어요. 뜻을 품고 시작했다면 도중에 지쳤을지도 모르지요.”

김희수 작가는 지난 11월 오랜만의 개인전 <매듭+>에서 ‘진주낭’을 비롯해 ‘궁중약낭’ ‘수오방낭자’ ‘수노리개 한 쌍’ ‘연꽃 노리개’ ‘궁수낭’ 등 왕실과 궁중에서 쓰던 매듭 공예품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호 표지에 소개한 ‘진주낭’은 조선시대 주머니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으로, 궁중 공식 행사에서 왕비와 공주들이 겉치마에 착용하던 것이다. “흰 실크를 붉은색으로 염색한 다음 도안을 그리고 색실을 정해서 수놓으시는 분께 금사로 수를 부탁드리지요. 그다음 속지는 속지대로, 겉지는 겉지대로 만들어 붙여서 주머니 형태를 만든 다음 거기에 한 올 한 올 진주를 단 거예요. 파란 끈목을 짜서 달고, 마지막엔 빨간 가락지를 끝부분에 끼워 장식하지요.” 놀라운 점은 이렇게 복잡하고 화려한 전통 매듭이 그 옛날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 노리개만 해도 당시 남자의 것이기도 했기에 모두 책으로 전해져 내려오지만, 매듭만은 여자의 것이어서 책으로 남겨진 것이 없다. 그래서 무형문화재의 존재가 소중하고 이수자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김희수 작가의 생각이다.

1 ‘수오방낭자’, Embroidered five-colored pouch,14x12cm, 매듭길이 8cm, 2005, 2 ‘궁중약낭’, Royal medicine pouch, 10x12cm, 술길이13cm, 3 ‘연꽃 노리개’, Lotus ornament with strawberry tassels, 전체길이 31cm, 술길이 12cm.
김희수 작가 역시 박물관에서 궁중 가례도를 보고 그 안에 재현된 의복이나 장신구 모습을 관찰해서 전통 매듭을 연구했다. 운이 좋아 궁중복식연구원에서 고증과 복원 작업에 참여하는 시어머니와 스승인 김은영 선생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고증과 복원 작업을 거쳐 옛 왕실과 궁중에서 쓰던 전통 매듭 공예를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다 보니 사람들에게 쉽게 보여주거나 만지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해외 전시를 하거나 선물을 할 때도 딱 하나밖에 없는 소장품을 줄 수가 없어서 ‘그림으로 그리자’는 생각을 했어요.” 김희수 작가는 3년 전부터 민화를 배우기 시작해 그동안 만들어놓은 매듭 작품들을 하나씩 그리고 있다. 표지에 실린 ‘진주낭’ 역시 실제 작품을 그림으로 재현한 것이다.

옛것을 찾아내 곱디고운 본디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 작가는 지금까지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옛 그림에서나 보던 것들을 손끝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자료를 찾다 보면 여기저기 박물관에 두서없이 흩어진 것이 많았다. 그래서 김희수 작가는 흩어진 우리 것을 한데 모아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전통 매듭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요. 의미 있는 기증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어요. ‘옛것의 아름다움’을 복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접목한 다양한 매듭 작품을 만든다면 전통 매듭이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 세대도 좀 더 관심을 갖지않을까요.” 김희수 작가는 2016년 가을께 다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와인 잔 걸이, 냅킨 링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소품을 선보일 예정. 전시장 안에 테이블을 두고 테이블웨어 전체를 매듭 공예로 꾸며볼 계획이다.

김희수 작가의 집 안 곳곳엔 손때 묻은 고가구가 놓여 있다. 폭이 좁은 선반장과 소반, 수납장이 색색의 화려한 매듭 공예 작품들과 멋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옛것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옛사람들이 쓰던 물건에 자연스레 눈길이 머무른다는 작가의 말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매듭이 재미있는 이유는, 갖가지 복잡한 모양의 매듭이 결국은 얇디얇은 실 한 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길게 늘어뜨린 실 한 줄을 끊거나 잇지 않고 무수히 접고 묶어내야만 비로소 하나의 매듭이 완성되듯, 작가 역시 20년 동안 힘든 고비마다 그 시련을 도려내지 않고 거름 삼아 인생의 계절마다 향기로운 꽃을 피워나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 유주희 기자 | 사진 김동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