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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가 최승천 새와 나무가 노니는 사랑의 숲

목공예가 최승천은 1934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났다. 196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산업미술대학원 원장, 미술대학 학장을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6년 토탈디자인 미술관에서 초대전으로 개최한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통인화랑, 선화랑, 서호미술관, 공평갤러리 등에서 수많은 개인전을 열었다. 2000년 대통령 근정 표창과 교육 공로 표창을 받았으며 2014년에는 디자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표지 작품은 ‘나무를 그리다’, 자작나무, 2013
소년 최승천이 초등학교를 가려면 10리 길을 걸어야 했다. 감악산과 파평산이 둘러싸고 있는 그의 고향은 강릉 최씨 문중을 중심으로 5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임진강 변의 작은 마을. 고개를 들면 하늘은 1천 평이요, 지천이 나무고 돌이고 물이고 흙이었다. 호기심 많은 소년은 산 한 번 쳐다보고, 꽃향기도 맡아보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따라 종종거리곤 했다. 가장 순수하고 말간 시절의 기억은 소년의 마음에 오롯이 남아 평생의 동기가 되었다. 최승천 작가의 작품에 언제나 새와 나무가 등장하는 이유다. 뒷동산의 밤나무 숲, 철 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 사이를 누비던 텃새들의 잔상은 그에게 오랫동안 새와 나무를 화두로 삼게 했다.

최승천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무는 1970년대에 프랑스에서 마주한 거대한 나뭇가지 형상을 구현한 것이다. 하늘을 가득 메우던 조밀한 나뭇가지 형태는 평생 작업의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 그렇게 1980년대 추상 작업부터 최근 작업까지 새와 나무는 언제나 등장하는 아이콘이 됐다. 회고전이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만난 최승천 작가는 그저 “그건, 사랑이지”라고 말하며 잔잔하게 웃는다. 그에게 새와 나무는 순수하던 시절을 향한 그리움이자 안식이며, 끊이지 않고 작업할 수 있게 해준 뜨거운 열정이 아닐까.

나무의 형상을 살린 아트 퍼니처를 제작할 당시, 거의 1년 동안 나무를 관찰하고 드로잉해 모델을 만들었다. 전시장에서는 실제 모델과 함께 완성한 아트 퍼니처의 초창기 조형 작품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조형 감각으로 탄생한 아트 퍼니처
1960년대 초기 작업은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한 조형물이 대부분이었다. 새로운 조형 감각에 갈증을 느낀 작가는 이후 직선적이고 대칭 구도의 조형물을 시도했는데, 최근작과 비교해 남성적이고 추상적인 형태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회고전 <최승천, 시간의 풍경>은 이런 작품의 변화를 시대별로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작가의 집에서 사용하는 손때 묻은 가구들을 전시장으로 옮겨 찻방, 거실, 안방 쇼룸 등으로 구성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나뭇결과 형태가 견고하게 남아 있다.

최근 작업 중인 식물 그림. 그의 손에는 언제나 콤팩트 카메라가 들려 있는데, 쉽게 지나치는 주변 식물을 사진으로 담고 그림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온 건 오래 사용해 반들반들해진 목마다. 그는 느티나무의 휜 부분을 그대로 살려 곡선으로 처리하고 금속으로 다리와 손잡이를 만들었다. 벽면엔 아들 최정헌 씨가 환하게 웃으며 이 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시절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가족을 생각하는 다정한 아버지의 마음이 서린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아트 퍼니처와 오브제 작업 외에도 많은 시도를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화장 도구 커버. 흑단에 꽃살 문양을 넣었다. 
무엇보다 최승천 작가를 설명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그가 1990년대 시도한 아트 퍼니처다. 그는 인제에서 참나무와 적송을 채취해 2년간 건조한 후 나무 본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오브제 형태의 아트 퍼니처 시리즈를 시작했다. 아트 퍼니처라는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 그건 하나의 실험이자 모험이었다. 나무껍질이나 옹이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벤치를 만들거나, 부분 커팅한 향나무 뿌리를 일반 목재와 대칭되게 연결해 벤치 다리로 만들었다. 벌레가 나무를 갉아 먹고 지나간 자리를 가공하지 않고 하나의 오브제로 재탄생시킨 작품도 있다. 특히 조선시대 고건축에서 차용한 이음매 공정은 최승천 작가만의 한국적 조형미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트 퍼니처 작업에 공포貢包, 서까래 등 한국의 고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우리 나무를 사용해 한국적 정서를 담으려 했고, 최승천 작가만의 조형미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예라고 하면 순수 미술과 달리 쓰임이 우선해야 한다고 하죠. 쓰임이 없는데 공예에 속하는가 하는 반론도 있었어요. 하지만 고등교육을 받고 작품을 만드는 작가라면 조형성에 대한 의미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래 서양화를 공부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늘 회화 작품에 대한 그리움이 있거든요” 이렇듯 그는 실용성을 추구하던 한국 목공예의 기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작가주의적 발현은 무엇일까 늘 골몰했다. 그리고 그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데 시간과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소년을 닮은 팔순 작가

며느리인 번역가 정소미 씨의 글을 옮기자면 최승천 작가는 작업에 매진하는 지독한 일 중독자다. “두 번의 봄과 여름, 한 번의 가을과 겨울을 거치는 동안, 전기 샌더로 장시간 나무를 다듬으며 미세한 나무 분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써서 때 아닌 눈사람이 되기도 하셨고, 손과 팔이 긁히고 베이는 것은 예사였으며, 저러다 탈진하시는 것이 아닌가 염려될 만큼 벌게진 얼굴이 땀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림을 완성해가며 진정으로 즐거워하셨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아버지의 작품이 볼수록 편안하고 따뜻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_‘나의 시아버지 최승천 작가’ 중에서 발췌

1 재학 시절 학교 경비 아저씨가 갖고 있던 껍질이 벗겨진 향나무를 가져다가 옷걸이 겸 오브제를 만들었다. 벌레가 나무를 파먹으면서 생긴 홈을 그대로 살렸더니 멋스러운 조각품이 됐다. 
2 20년간 작업해온 가족 시리즈 중 하나. 온화한 보살의 미소가 특징인 가족 시리즈에서는 언제나 알록달록한 새가 함께 있다. 가족의 사랑과 평온을 염원하는 그만의 상징.

이번 전시에도 그런 그의 열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림 몇 점을 만났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식물 드로잉이다. 최승천 작가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 식물과 꽃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다. “이 꽃이 뭔지 아세요? 상추를 수확하지 않고 오래 두면 이렇게 꽃대가 나와요. 지나치면 모르지요. 오늘, 내일, 모레가 또 다르고 촬영할 때마다 또 달라요. 한 번도 같은 풍경인 적이 없어요. 요즘 꽃이 많이 펴서 만날 찍지요. 한 송이도 찍고, 전체 꽃밭도 찍고…. 어제는 봉오리가 진 꽃이 오늘은 피고, 또 다른 꽃은 지는 그 변화를 계속 담고 그리고 있어요.”

회고전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여전히 콤팩트 카메라를 손에 꼭 쥐고 일상의 작은 모습을 관찰하는 최승천 작가. 그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소년같은 호기심을 품은 뜨거운 열정가다.

찻방으로 꾸민 공간은 1990년대에 작업한 아트 퍼니처로 구성했다. 벽면에 걸린 작품 두 점 ‘새가 있는 풍경’은 가장 대표적 아트 퍼니처. 
가족을 생각하는 다정한 아빠
최승천 작가가 평생 작업해온 시리즈가 세 개 있다. 새와 나무, 아트 퍼니처 그리고 가족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20년 전부터 만들어온 가족 시리즈 대표작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건 뺑덕 어미 얼굴이에요. 골이 잘 들고 화도 잘 내 생긴 게 이렇지. 허허. 이 여인은 평생 가도 ‘네’ ‘네’ 하는 며느리야. 시어머니가 구박해도 ‘네’, 아들딸이 대들어도 ‘네’ 웃고.” 아들딸을 품은 4인 가족도 있고, 한 자녀 가족도 있고, 다정한 엄마와 듬직한 아빠의 모습도 있다. 다양한 가족 조각상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새다. 머리 위에 내려앉거나 가족이 안고 있는 새는 작가가 늘 추구하는 평화와 사랑의 상징이다. 언제나 고향과 자연, 가족을 그리워하는 작가 마음의 고향이다.

작가의 집에서 세월이 그대로 녹아난 가구를 ‘리빙룸’이라는 공간으로 가져와 재구성했다. 벽면에 걸린 유화는 1961년 회화를 공부하던 시절에 그린 작품 ‘해바라기’와 ‘자화상’. 적송으로 제작한 가구와 함께 아들을 위해 50여년 전에 만든 목마도 전시했다.
최승천 작가의 작업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그간 새와 나무라는 공통된 화두 안에서 꽃이라는 오브제를 추가해 조형미를 표현했다면, 요즘 그는 좀 더 과감하게 커팅해 작품의 스케일을 확장하고, 유화 물감을 사용해 회화성을 강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회고전 <최승천, 시간의 풍경>에서 초기작부터 이런 회화성을 강조한 그의 최근작을 만나보자. 이는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강찬균(금속), 황종례(도자)에 이은 공예 부문 세 번째 전시로 목공예 부문으로는 첫 전시다. 1960년대 초반부터 현대에 이르는 대표작 1백20점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니 놓치지 말자.


 취재 협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02-2188-6000)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