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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작가 아누 투오미넨 따뜻하고 경쾌하게, 뜨개로 이은 예술
아누 투오미넨은 북유럽 핀란드에 거주하며, 1992년부터 스웨덴, 프랑스, 일본, 캐나다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작품을 2차원이나 3차원으로 표현하려면 코바늘 뜨개질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1994년부터 코바늘 뜨개질을 배웠고, 코바늘로 이은 작품을 공간 설치, 인테리어, 오브제, 소품 형태 등의 방식으로 전시한다. 1995년 멘테아트페스티벌에서 대상을, 2003년에는 핀란드의 대표적 예술상인 아르스페니가 상을 받았다. 지난 10월 서울의 갤러리 팩토리에서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열었으며, 내년 1월에는 스웨덴의 스톡흘름에서 겨울의 흰색과 아련한 봄을 기다리는 녹색으로 구성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지금 마주 서 있는 작품 앞에서 당신의 느낌은 따듯합니까, 차디찹니까?” 미술 작품 감상과 느낌은 순전히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은밀하고 미묘하고 감각적 영역이니 한 작품을 두고도 이세상 사람 수만큼 혹은 그 몇 배 이상의 다양한 표현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현대미술, 그중에서도 설치 작품을 두고 빅테이터처럼 유난히 자주 그리고 많이 등장하는 관객의 형용사를 꼽는다면 아마도 ‘차갑다’ ‘냉소적이다’ ‘난해하다’가 아닐까. 해체되고 분절되고 뒤섞이고 기계적 모습으로 갤러리의 하얀 벽을 배경으로 놓인 작품 앞에서 세상의 평범한 문화적 소시민은 낯선 기분을 느끼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감성의 미궁으로 빠져들 때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반면, 핀란드의 현대미술 작가인 아누 투오미넨Anu Tuominen의 코바늘 뜨개질 작품 앞에서 대다수의 관객은 따뜻함, 경쾌함, 기발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일상에서 친숙하던 그 감정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요 근래에 살짝 밀쳐둔 그 감정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자신만의 내밀한 감상평을 만들어간다. 낡은 머그잔에서 작은 물결이 퍼지듯 얇은 털실이 이어져 나오고, 손때 묻은 채칼 위에 채 썬 당근처럼 오렌지색 털 송이가 꽂혀 있으며, 접시 위에 경쾌한 컬러의 털실 뭉치가 새로 나온 미트볼처럼 놓인 작품을 보며 누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으랴.


원형 코바늘 뜨개의 오묘한 컬러 배치로 갤러리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작품 앞에서, 마치 삶의 그물처럼 천장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설치 작품 앞에서도, 때론 서로 다른 흰색으로만 색의 변주를 만든 작품 앞에서 관객의 미소는 은은한 감탄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마치 “색이란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것이었나. 우리는 이토록 많은 색이 어우러지고 연결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하며 북유럽 핀란드에서 뜨개질하는 작가와 멀리 지구 반대편의 갤러리에 서있는 관객의 두 가슴을 얇은 실로 이어주는 것처럼.

“제 작품에서도, 삶에서도 점점 더 중요한 단어가 되는 것이 ‘컬러’입니다. 지난 9월 전시 때문에 서울의 서촌에 머물렀을 때는 종일 망원경으로 거리를 내다보며 도시의 사람들과 그들의 색을 관찰했어요. 서울에 머무는 중에 베트남으로 여행도 다녀왔는데, 그곳 자연에서는 갖가지 식물의 녹색을 보았고 실크 공예품에서 다채로운 천연색을 보았죠.”


늘 새로운 갈래가 존재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색채는 작가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이러한 경탄은 색색의 실뭉치를 색색의 사물과 함께 배열하거나 코바늘 뜨개로 잇는 작업을 거쳐 시각화되고 저마다 고유한 선과 형태를 만나 다시 입체화된다. 때론 수 많은 색채 때문에 작품에 담긴 선과 형태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모든 색을 배제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색을 비워도 흰색 자체에서 따뜻한 느낌부터 차가운 느낌까지 갖가지 고유한 톤이 느껴지니 다양한 색을 보나 하나의 색을 보나 색채에 대한 감탄은 늘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아누 투오미넨 작가가 작품의 영감을 얻는 보물 창고는 대자연과 벼룩시장. 낡고 오래되어 헐값에 시장에 나온 물건이나 그마저도 되지 않아 시장 한편에 내팽개쳐진 물건이라도 유난히 그의 발걸음을 잡는 것이 있다. 투박하고 못생긴 물건이지만 작가는 자신이 본능적으로 남의 눈에 다 드러나지 않는 유난한 아름다움이 있는 물건을 알아본다고 믿는다. 그의 작품에서 벼룩시장의 물건은 털실의 따뜻한 색을 만나고 형태를 만나 그제야 관객의 눈에도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발하지만, 정작 작가는 물건이 재투성이 신데렐라 신세였을 때부터 그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이런 오묘한 만남은 수많은 여행을 통해서,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많이 하는 여행을 통해서도 얻는다.
“저는 사람이 생태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여행을 하는 것 같아요. 여행에서 보고 배운 많은 것의 조각들을 제 작품에 담고 싶어요. 그래서 저의 고향인 핀란드에서도 여행을 자주 다니지요. 북쪽 라플란드의 원시적 해안선부터 깊은 숲과 호수까지,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자연을 경험할 수 있으니 여행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오래된 것과 순수한 자연, 앞만 보고 전진하도록 훈련받은 대다수의 차가운 현대인에게 이 두 가지는 걸음을 멈추고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노스탤지어다. “아누 투오미넨의 작품은 구식으로 완성하는 독특한 현대미술”이라고 말한 비평을 미처 알지 못하던 관객도 작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움켜쥐고 있던 이 노스탤지어를 만나 마음이 이완된다. 혼자 카페에 앉아 생각하거나 벼룩시장을 걸어 다니거나 라플란드의 오두막에서 벽난로를 쬘 때 충만한 행복감을 느낀다는 작가의 삶이 색색의 컬러로 연결되는 작품에 담겨 관객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그리하여 관객은 미지의 내일 역시 오늘 이 순간처럼 따뜻하고 유쾌하게 이어질 것을 직감하며, 그 순간 또 한 번 이완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글 김민정 수석기자 | 사진 제공 아누 투오미넨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