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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김시연 내밀한 풍경을 조각하는 여자
미술가 김시연은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순수 미술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아트 바젤 홍콩, 2013년 윌링앤딜링, 2012년 두산갤러리 서울과 뉴욕 전시를 비롯한 다수의 개인전과 국내외 다양한 그룹전에 참가했다. 2003년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에서 펠로십, 2007년 파라다이스 예술상, 2010년 제1회 두산 연강 예술상을 수상했다.


사진 참 예쁘다. 미술가 김시연의 ‘Cup’ 연작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시각적 아름다움이다. 개인적으로 현대미술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조형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시연 작가의 그림에는 시선을 은근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과하지 않은 채색과 정갈한 곡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마주하는 사물이 불균형한 조화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미적 쾌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내밀한 감정선이 잘 드러나길 바랐어요. 색채와 구도의 선택은 모두 그런 의도였습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독립적이기보다는 그림 열두 점이 하나의 작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김시연 작가의 말처럼 그의 그림은 매력적이다. 그러면서도 마냥 아름답고 평온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구도의 위태로움에 있다. <행복> 8월호 표지 작품 ‘Cup’(archival pigment with fine art paper, 88×130cm(image), edition of 3)을 보시라. 금방이라도 떨어지거나, 부서지거나, 흐트러지기 직전의 찰나를 포착한 것처럼 긴장이 흐른다. ‘Cup’, 곧 ‘잔’이라는 표지작과 동일한 제목의 다른 작품 열두 점도 마찬가지다. 서로 아슬아슬하게 맞닿아 있는 잔의 모습은 이사를 떠난 빈 집에 버려진 것처럼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가장 일상적인 물건이지만 낯설고 온기가 없다.


“제 작업은 소소한 일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른바 여자 물건이라 할 수 있는 그릇이나 식재료, 식탁과 집 등 제 생활 속 물건이 곧 소재로 확장됩니다. ‘Cup’은 또래 자녀를 키우는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출발했어요. 차 한잔 마시며 브런치 모임을 하는데, ‘과연 서로가 소통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더군요. 각자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공통 관심사에 맞장구 치며 관계를 유지하지만 결국 내면의 공허함만 남을 뿐이었죠. 평소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그늘을 불균형한 사물로 의인화했다고 할까요?”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그가 말하는 ‘영혼이 통하는 소통’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싱싱해 보이지만 구멍 난 식물처럼 뻥 뚫린 관계, 탁자 모서리에 위태롭게 놓인 찻잔처럼 언젠가 추락할지 모를 현대인의 날 선 고독은 그가 부여잡고 있는 커다란 질문이다.

김시연 작가가 소통의 부재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소를 전공한 그는 오랫동안 공간과 오브제를 소재로 한 설치 작업을 해왔다. 소금, 비누, 유리병 등 외부의 영향에 쉽게 변형되는 민감한 소재를 집이라는 공간에 세우고, 녹이고, 부수고, 깨뜨리는 행위를 통해 내면의 정서를 표출해왔다. 그에게 집은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안전한 장소이자, 외부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는 은밀한 방이었다. 반면 한 남자의 아내, 아이의 엄마, 가족 구성원의 역할 속에 부여된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김시연 작가는 일상에 매몰된 감정을 그가 늘 만지고 보는 식재료와 생활 소품을 이용해 드러낸다.

그의 초기 작업이 집이라는 장소를 축으로 한 설치미술이라면, ‘Cup’ 작품을 비롯한 근작은 모두 사진이다. “제가 사진가는 아니에요. 기록적인 이유로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죠. 초기에는 사진가를 섭외해 촬영했는데, 이제는 사진이 독립적 힘을 갖고 존재해요. 두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뉴욕에 머물 때 뉴욕국제사진센터(ICP)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사진으로 흡수되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됐죠. 통제가 가능하고 프레임에 덧셈 뺄셈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사진은 매력적인 매체입니다.” 빛이 가장 좋은 날과 시간을 기다려 자연광 아래 프레임을 담고, 정제된 톤을 만드는 리터칭 작업을 거친다. 그렇게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은 오랜 여운이 남는 시와 닮아 있다.

청담동 갤러리엠에서 열린 전시 <Cup:잔>에서 자신을 위로하는 작품 열두 점을 전시했다. 6년 만의 개인전이었다. 열두 살 난 딸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 역할을 하느라 느릿느릿 작업한다는 그는 여전히 일상의 관계와 생활 속 감정이 화두다. “늘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하는 습관이 있어요. 내 안의 이야기를 담는 것에는 변함없지만, 이제는 가족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취재 협조 갤러리엠(02-544-8145)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