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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신수원 옛날 옛적 내가 살던 곳에서는…

신수원 작가는 대구예술대학교 서양화학과와 계명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대구 두산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을시작으로 대구 갤러리 로, 울산 현대예술관, 경주 라우갤러리, 서울 인사아트센터 등 2013년까지 해마다 개인전을 꾸준히 열었다. 현재 대구에서 작업하는 그는 목공예가인 아버지와 함께 2인전 로 관객을 만난다. 5월 1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갤러리 위에서. 문의 02-517-3266


능이 다섯 개가 모여 있는 마을이라 오릉이라 불리던 경주의 시골 마을에 살던 소녀 신수원은 하루 종일 집 주변을 뛰노는 일이 일상이었다. 아버지가 손수 지은 나무 집은 삼 남매의 숨바꼭질 공간이었고, 능은 ‘자연산’ 미끄럼틀이었다. 봄이 되면 창 너머에는 이름 모를 샛노란 들꽃이 지천으로 펼쳐졌고, 그 가운데 늠름하게 서 있는 소나무는 마을의 정령이었다. 신수원 화가는 가장 순수하고 말갛던 어린 시절의 파편을 모아 화폭에 담는다. 새벽을 깨우던 닭의 울음소리, 느릿느릿 걸으며 햇살을 즐기던 고양이, 바람 따라 흩날리던 꽃과 나무는 그가 도시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잊지 않은 유년 시절의 추억이자 애틋한 그리움이다. 그의 그림 속에 나무, 꽃, 물고기, 고양이, 선인장, 집, 계곡 등 자연과 집이 주로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사방이 들판인 마을 한가운데 딱 두 집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화려한 장난감 대신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사줬고, 그것을 들고 옆집에 살던 화가 아저씨 작업실에 가서 그림을 그리곤 했지요. 마을 전체가 제 놀이터였어요. 지금도 종종 고향을 찾아가는데, 당시에 제겐 키다리 아저씨처럼 보이던 소나무가 실은 작고 여린 나무더군요. 어른이 되어 마주한 자연은 세상의 전부라 믿었던 창 너머 세상과는 달랐습니다. 결국 제 마음이 달라진 것이겠지만요.”


형태를 단순화한 화법과 파스텔 색채 등 작품 경향이 작업 초기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여성과 몸을 화두로 페미니즘적 시선을 담은 초창기에는 어두운 색채가 지배적이었다. 그런 그가 변화한 것은 아이 엄마가 되면서부터다. “대학교 4학년, 이른 나이에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면서 제 근원에 대한 물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붓을 들고, 전시장을 쫓아다닐 정도로 그림에 몰입하면서 그 해답을 찾으려 했지요.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집과 가족이라는 세계에서 저를 분리하는 시간이자 가장 자유로운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면서 마음대로 뛰놀고 뒹굴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마음 깊숙이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어 아이의 눈을 마주할 때마다 그런 확신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그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기억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

꽃이 박힌 피아노 그리고 꽃이 내려앉은 집 두 채와 붉은색 하트… <행복> 5월호의 표지 작품 ‘사랑의 꿈’(acrylic oil pastel on canvas, 46×38cm, 2013)은 신수원 화가의 그림일기와 흡사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친구가 교실에 있는 풍금을 연주하는 거예요. 집에 피아노가 없던 저는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았던지, 마치 소리가 시골길을 따라 집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 설렘을 아이의 눈으로 보았을 때 어떤 그림일까 상상했어요.”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그림 속 대상들이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회화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과 닮았다. 원근감을 배제하고 대상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지는 등 불균형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화가 아저씨는 무속인을 소재로 그림 작업을 했어요. 작업실 벽면에는 강렬한 원색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죠.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시각적으로 명확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균형의 색 대비를 좋아합니다.” 신수원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것이 색채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늘 초록빛이던 어린 시절의 집과 계절에 따라 변하던 들판의 색, 달빛과 산의 그림자 등의 풍경을 명징하고 순수한 형태의 색깔로 재현한 것.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막연한 동심과 다정한 온기를 느끼게 한다.

가족은 끝까지 함께 가는 동행자
그의 그림이 유년 시절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집과 자연, 동물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작업의 근원이 ‘가족’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족과 집은 제가 태어난 곳이자 근원이고 끝까지 함께해야 할 동행자예요. 이는 제 모든 작품의 전제 조건입니다.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그림 앞에서 짧게나마 자신이 가장 순수하던 시절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소박한 행복의 감정을 느끼면 좋겠어요. 마음속에 있는 그리움을 그림 속에서 발견하고 가져가길 바랍니다.”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