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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황나현 씨 얼룩말이 당신에게 묻는다


처음으로 혼자서 초원을 돌아본 얼룩말이 말간 눈으로 묻는다. “다이아몬드와 꽃 중 어떤 것이 더 좋아요?” 바람보다 앞서 달리나 싶더니, 지평선 위 들꽃도 산 너머 반짝이는 금강석도 어느 새 눈에 다 담았나 보다. “당연히 다이아몬드지!” 얼룩말의 눈이 커다래진다. “꽃처럼 색깔이 예쁘지 않고 달콤한 향기도 없고 쪽 빨아서 먹을 꿀도 없는데, 진짜 다이아몬드가 좋아요?”황나현 작가의 캔버스 위에서 얼룩말은 맑고 깨끗한 낙원을 뛰논다. 알록 달록한 꽃목걸이를 걸고, 금색 화관을 쓰고, 파아란 꽃비를 맞으며 맑은 눈으로 관객을 응시한다. “나는 꽃이 더 좋아요”라고 웅변하려는 듯. “자연의 많은 요소 중 귀금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물리적 특성과 수요만큼 공급이 많지 않다는 희소성 때문에 가치 높게 평가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 인간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예요. 우리처럼 귀금속을 소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얼룩말에게는 그저 작은 돌 정도의 가치밖에 없을 테니까요. 오히려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얼룩말에게는 다이아몬드 같은 가치로 느껴질지 모르지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바다로 강으로 낚시를 가고, 여행을 한 터라 대학 시절부터 황나현 작가의 작품 소재는 자연스레 ‘자연’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라는 두려움이 있던 대학 시절에 그가 그린 자연은 오염되고 파괴적이고 어두웠다. 강이 흐르듯 마음도 흐르는지, 대학원에 진학하자 그의 마음은 ‘아름답고 예쁜 자연을 그리고 싶다’는 물길로 흘러갔다. 자연 속에서 숨 쉬며 움직이는 야생 동물이 자연 속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사람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동물을 보러 종종 다니던 동물원에서 어느 날 얼룩말의 맑은 눈과 마주한 순간, 갈래가 많던 생각의 물줄기가 드디어 대해를 만났다. 아름답고 화사하고 사람에게 순수한 위로를 주는 자연!“동물 중에는 야생 동물이 가장 순수한 자연인 것 같아요. 동물원에서 본 얼룩말은 마치 사람에게 이야기를 건네려는 듯 눈이 너무나 예뻤죠. 그 눈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얼룩말 주변의 꽃과 과일 등은 자연 세계의 순수성을 뜻해요. 자세히 보면 점처럼 작게 표현한 사람이 그 순수한 세계에서 뛰놀고 있죠. 자연에서 사람은 이렇게 작은 존재에 불과해요. 그러니 세상 모든 걱정을 다 짊어진 듯 힘들어하고 찌들어 살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제 그림이 관객에게 이런 위로를 전해주면 좋겠어요.”

얼마 전 갤러리에서 한 관객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흐드러진 꽃 속의 얼룩말 그림을 보며 많이 호전됐다는 감사 인사를 정말로 전해왔다. 참으로 신기한 이심전심이 아닌가. 사실 이런 힐링 효과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 자신에게서도 드러난다. 독신으로 살겠다고 다짐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는 아이 갖는 것을 미루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고 최근 시골에 아담한 이층집을 지으면서 지난 작품을 돌아보니,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작품의 색채가 점점 더 화사하고 다채롭게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천연색 순수한 자연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삶도 순수의 세계로 흘러가는 듯 느껴졌다. 요즘 황나현 작가의 작품 색채는 더욱 화사해졌고 금색도 즐겨 사용한다. 자연에서 빛이 반짝이는 그 느낌을 오롯이 표현할 만한 물감이 없어 눈부시게 화려한 빛은 금빛으로 그린다. 다이아몬드보다 꽃 한 송이가, 금보다 풀 한 포기가 더 아름답다고 세계관이 바뀌는 순간, 화관을 얹은 얼룩말이 당신에게 말을 걸 것이다. 직접적 설명이 넘치는 세상에서 얼룩말은 관객에게 혹시 진짜 소중한 것을 못 보며 살아오지 않았느냐고 말없이 묻는다. 관객은 이 질문에 답하려 멀리 밀쳐둔 자연을 생각의 여백으로 불러온다. 얼룩말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자연을, 예술을 사색의 여백에 수용한다. 그리고 위로를 경험한다.


‘새벽녘에’, 116X91cm, 한지에 혼합 재료, 2012


황나현 작가는 경원대학교 학부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2004년 홍대 앞 희망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에 부산 컬렉터들의 관심이 높고, 대전의 한적한 마을에 이층집을 짓고 살고 있어 부산에서도 개인전을 자주 연다. 최근 북경 아트페어, 이탈리아 볼차노의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말을 주제로 한 작품이 주목받는 올해는 서울과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이명수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