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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궁금해요] 화가 사석원 씨 봄에게 달려가는 힘찬 황소
동양화를 전공한 사석원 씨는 졸업 후 파리에서 유학하면서 작렬하는 아프리카 미술에 빠져 유화를 시작했다. 왼쪽 작품은 ‘벚꽃 동산에 선 가면 쓴 호랑이’(2008), 오른쪽은 ‘수천 개의 손이 달린 올빼미’(2008)로 지난해 뉴욕 전시에서 호평받았다.
1970년대 소년 사석원.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하는 대신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혹은 집에서 기르던 닭이나 토끼를 돌봤다. 그 때문에 초등학교시절 내내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았고, 그 덕분에 그림 하나는 잘 그리게 되었고, 화가가 되었다. 특히 동물 도감을 옆에 끼고 다니며 그 안의 동물들을 모조리 그렸다.
“방학이면 한 달 내내 경기도 포천의 외갓집에서 지냈어요. 강아지, 닭, 돼지, 소는 물론이고 시꺼먼 밤에 나가보면 변소 꼭대기에 앉아 있는 부엉이도 만났어요. 그 어린 시절, 동물이 제게 ‘팍’ 꽂힌 거죠.” 산수화, 인물화, 정물화 등 가리지 않고 다작 多作하는 사석원 씨가 유달리 동물 소재에 애착이 많은 것은 유년의 기억 때문이다.
유화 물감 튜브가 카펫처럼 깔려서 발 디딜 틈이 없는 작업실. 그는 물감이 캔버스 위에서 층을 이루며 두툼하게 일렁이는 작품을 많이 그린다. 그런데 팔레트가 보이지 않는다. “색을 잘 섞지 않아요. 원색을 좋아하죠. 색과 색이 캔버스에서 우연히 어우러지는 게 즐겁습니다. 왜, 여자와 남자가 만날 때 느닷없이 불꽃이 일잖아요. 황야의 이리들처럼. 약속하고 예약하고 만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듯 물감이 서로 ‘피 튀기며’ 섞일 때 원시적인 생명감이 솟아난다.

찰나의 혈전 血戰.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이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다. 시작은 전통 수묵화였다. 먹의 농담과 선의 속도감만으로 동물의 힘찬 동세를 그려냈다. 표지 작품 ‘황소와 모란꽃’은 ‘시린 겨울이 지나고 느닷없이 찾아온 봄이 기뻐서 날뛰는 소를 그린 것’이다. 만화방창 萬化方暢을 알리는 반가운 주인공으로 소를 삼은 이유는 뭘까? “소는 순하고, 예쁘고, 고맙고, 착해요.” 외갓집에서 키우던 소는 착해서 미워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어린 그에게 소는 거대한 존재였다. 쇠뿔은 힘을 상징한다는 것을 감지한 동시에, 그 뿔은 힘을 남용하는 무기가 아님도 알았다. 어릴 때 좋아하던 만화 <타이거 마스크>의 정의로운 주인공처럼.
장닭을 키우고 싶지만 아파트에 사는지라 꿈을 접었다는 그. 대신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에 성남 모란시장을 찾고, 종종 서울대공원에 가며, 때때로 아프리카로 가서 동물과 눈을 맞춘다. 사석원 씨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피카소의 말 “새 울음소리에 왜 귀 기울이지 않나”에서 그가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를 어림짐작해본다. 그는 책 <꽃을 씹는 당나귀>에서도 이렇게 적었다. “사람 목소리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고 깨달을 때, 세상은 아름답고 그런 세상에서 사는 인생이 행복하다. 모두 모두 만세, 만만세다.”(61쪽)
뉴스에 나오는 일만 사건이 아니라는, 맑게 갠 하늘도 사건이고, 붉게 노을 진 하늘도 사건이라 말하는 그. 지난 수천억 년 동안 같은 풍경은 한 번도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다. 꽃이 피어 기뻐하는 소처럼, 일상을 사건이라고 받아들일 때 세상은 신비롭단다. 나의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우주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것이다. 아, 살아볼 만한 세상이다.

화가 사석원 씨는 1984년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 1989년 프랑스 국립 파리 8대학 석사 과정을 수학했다. 1989년 송원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40회 이상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 미국 뉴욕의 가나아트에서 열린 <검은 무지개(Black Rainbow)> 전시에서 다문화의 언어가 쓰인 칠판에 한국적 모티프의 호랑이 등 동물을 그린 작품을 선보여 <뉴욕 타임스> 등 언론으로부터 호평받았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